식탁에서 만나는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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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서 만나는 거창
  • 한들신문
  • 승인 2022.10.3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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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효민 조합원

 

#1 거창 IC 앞에 뭐 파는 곳이 생겼다는데 가볼래?
몇 해 전, 뭐 파는 곳이 왜 거기 있지 하는 의문을 가졌지만 일부러 가긴 좀 그래서 IC 나갈 일 있을 때 들렀습니다. 휑 한 느낌을 밀어내고 거창푸드종합센터 앞에 섰으나 ‘전화 주세요’라는 종이 쪽지가 붙은 문은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유리문 너머를 들여다보다가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어두침침함에 전화까지 해서 들어가 살만한 것이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냥 돌아섰습니다. 
  처음 거창푸드종합센터(이하 거창푸드)가 생겼을 때 이야기입니다. 저 뿐만 아니라 그곳을 설명할 수 있기는커녕 존재를 아는 지인이 거의 없었습니다. 초창기 운영진분들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그 당시 상황이 그랬다는 걸 전하고 싶습니다. 또한 그만큼 로컬푸드 시스템이라는 것이 로드맵을 잘 짜고 그것을 실행에 이르기까지 잘 견인하기 어렵다는 걸 증명하는 풍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2 이거 맛있다 어디서 샀어? 응 푸드에서.
   그래? 어느 농가 건데? 000 농가.
  이제는 친구들과 일상적으로 나누는 대화에 거창푸드가 자주 등장합니다. 특히 ‘누구네 농가 농산물’을 먹고 있음이 자연스러워진 것이 반갑습니다. 거창푸드 덕분에 먹거리를 생산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 사이가 가까워졌습니다. 
  거창의 먹거리 체계에 대한 비전을 품은 운영진이 로컬푸드 시스템에 대한 로드맵으로 지휘하고, 실무진들의 헌신적으로 쏟은 시간과 에너지는 곧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거창푸드를 거창 주민의 식탁에서 만나게 했습니다.

#3 장마가 진짜 무서워, 무슨 애호박이 칠천 원이래, 손 떨려서 된장찌개를 못 끓이겠네.
  2020년 장마를 기억하십니까. 채소 물가가 폭등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별로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거창푸드에서 애호박은 이천 원이면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000네 농가, 어떨 때는 무농약, 어떨 때는 토종 종자로. 
  가격이 안정된 것도 무척 중요합니다만, 농사의 ㄴ자도 모르는 사람도 소비를 통해 뜻있게 농사짓는 농부들의 농산물을 구입하고 싶고 뭔가 농업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거창푸드에 가면 그 마음을 풀 수 있습니다. 당연지사 농부들에게도 안정적인 판로는 농사에 큰 힘이 됩니다. 우리 지역에서 나는 토종과 무농약 농산물을 언제든 접할 수 있는 공간 덕분에 거창에 사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도움받고 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이익을 그렇게나 돌려주고 나면 어떻게 유지하나. 유지만 겨우 하면 뭐 하나, 그러려고 장사를 하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거창푸드는 거창에 사는 사람들의 식탁에 ‘거창’이 있게 하는 사업입니다. 공익사업입니다.
  손가락 하나로 냉장고를 채울 수 있는 세상에 살면서도 ‘그래도’ 거창 거잖아 하는 마음으로 거창푸드와 일반 마트를 병행해 장 보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거창푸드가 꾸준히 성장해 온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10월 26일 사업 종료가 더 아쉽습니다. 그동안 거창푸드는 우리네 식탁에서 거창을 만나게 해주었고 내 삶과 거창을 더 진하게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덕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을 알고 또 애정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고맙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거창에 사는 사람들이 ‘거창 농산물과 먹거리’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이어지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거창에 사는 삼십 대 여성의 삶’을 주제로 지난 호부터 연재를 시작한 전효민입니다. 육아-장보기-취미-일 등 제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일상을 4차례에 걸쳐 한들신문 독자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공감할 수 있는 글이면 더없이 기쁘겠다는 바람을 갖고 씁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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