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 있는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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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 있는 덕분에
  • 한들신문
  • 승인 2022.12.2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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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효민 조합원

오랜만에 거창문화센터에서 아이들 공연이 있었습니다. 반갑게 예매하고 여섯 살 아진이에게 재밌는 공연한다고 우리 보러 가자고 이야기를 해두었습니다. 한껏 들뜬 모습이 좋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무궁씨(남편) 출장이 그날로 잡혔습니다. 세 살 서진이 낮잠은 어쩌나 궁리 중에 창원에 사는 엄마를 거창으로 모셨습니다. 거기까진 어찌어찌 가족 힘을 빌려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헉, 달력을 다시 보니 매년 참여하고 또 매년 참여하고 싶은 행사 ‘토종축제’에 올해도 함께 하기로 했는데 마침 그날입니다. 무궁씨는 출장 가고 엄마는 서진이 재우는데 저는 토종축제에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진이 어쩌지.
  처음 한 생각은 ‘별 수 없다. 엄마 아빠 바쁜 날엔 애들도 그렇게 하루 보내는 거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도 소쿠리 장터가 있거나 야외 행사에 참여할 때는 아진, 서진이도 종일 바깥에서 놀다가 우리 일 끝나고 같이 퇴근하는 일이 가끔 있었기에 그럼 그런 거지 어쩔 수 없다 하면서도 뭐 좋은 방법 없을까 계속 모색했습니다. 서진이 낮잠을 포기하고 엄마께 애 둘 데리고 공연을 보시라 부탁드릴까부터 별별 플랜을 짜다가 아진이 갓난쟁이 때부터 살뜰하게 챙기는 소진이 이모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사정을 설명하니 고맙게도 오케이. 엄마랑 보고 싶다고 아쉬운 소리 할 줄 알았던 아진이도 오케이. 나에게도 더없이 좋은 결정이었습니다. 
  공연 하루 전, 같은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친구 혜명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며칠 전 태리 생일이었는데 오늘 공연 보고 나서 생일 파티를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나는 행사장에 있어야 하는데 어쩌지. 사정을 설명하고 공연장에 친한 이모와 같이 간 아진이를 거기서 데리고 생일 파티가 가주길 부탁했습니다. 번거로운 일이지요. 소진이와 혜명이는 서로 모르는 사이고 공연이 끝나면 모르는 사람 찾기에 공연장은 복잡합니다. 그래도 흔쾌히 수락해 준 덕분에 나는 읍사무소 앞 토종 축제장에 있으면서 아진이는 공연도 보고 친구 생일 파티에도 참석했습니다.
  축제장에서 저를 보면서 ‘아진이는요?’하고 묻는 사람들에게 ‘친한 이모랑 공연 보러 갔어요.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서 갔어요.’라고 말하면서도 엄마 아빠 없이 아진이가 자기 일정을 소화하는 게 좀 신기하고 많이 컸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여섯 살 아진이가 안심하고 함께 할 만한 이모들이 있다는 게 참 고마운 날이었습니다. 
  아진이를 낳기 전, 이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이모 삼촌이 많은 아이’로 자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이 이미 이루어졌구나 싶어 감개무량하고 내 힘으로 다 할 수 없었던 오늘의 상황이 기껍기도 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있어 이웃의 활약이 더 빛이 나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토요일 오후 한 시에 소진이 이모 손잡고 공연장 간 아진이를 다섯 시쯤 키즈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이웃이 있어 완성된 것이나 다름 없는 하루를 지내고 오늘 재밌었다고 활짝 웃는 아진이를 보면서 이웃이 있고 친구가 있어 저와 아진이의 거창에서의 삶이 더욱 풍성해지는구나 싶어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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