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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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다
  • 한들신문
  • 승인 2022.11.3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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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효민 조합원

 

첫째 아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고 이듬해 둘째가 태어났습니다. 서른에 결혼했는데 임신-출산-육아를 하다 보니 삼십 대 후반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다시 자기 화두를 펼치는 언니들을 곁에서 보며 ‘아이 키우는 일’이 어떤 시점에는 나의 전부에서 일부로 바뀌겠거니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몰랐습니다. 나름대로 재미있고 더없이 소중한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나니 신혼 여행때부터 ‘테니스를 배우고 싶어하던 효민’이가 십여 년 만에 고개를 들었습니다. 서진이가 어린이집 종일반에 간 지 한 달, 코트장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테니스를 배우고 있습니다.  
  코치님에게 레슨을 받으면서도 ‘누군가’와 테니스를 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테니스 게임하는 모습을 매일 같이 보면서도 남 일처럼 여겼습니다. 공을 못 치니까. 누군가에게 폐 끼치기 싫어서. 
  “뭐 어때요. 같이 쳐요. 재밌잖아요.”라며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권하는 친구 부부와 우연히 한 번 게임을 했습니다. 낯설지만 즐거웠습니다. 내게도 슬며시 코치님 아닌 누군가와 마주 보고 테니스를 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마침 고맙게도 테니스장에서 만난 언니들이 모임에 한 번 오지 않겠느냐 권해주셔서 테니스 치는 분들과 어울릴 기회가 생겼습니다. 거기서 만난 분들은 참 친절했고 그럼에도 제 마음은 그날로부터 심란해졌습니다.
  테니스는 넷이서 치는 게임입니다. 내가 너무 못 쳐서 지는 것은 물론이고 나 때문에 재미없는 게임이 되고 있다는 부담감으로 처음 게임을 할 때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파트너와 상대편 모두에게 미안하고 어디로 숨고 싶고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제 발로 테니스 코트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이렇게 되니 재밌어서 하루도 빠지지 않던 레슨도 시큰둥해졌습니다. 왜 이렇게 실력이 제자리걸음인지 스스로에게 화가 나다가 아니 내가 재밌으려고 배우는 거지 스트레스 받으려고 배우는 게 아닌데 하면서 어처구니없어 하기도 했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오래 배운 운동이 없었는데 그만둘까 하던 시점, 오히려 저의 온갖 불평불만을 듣던 무궁씨는 테니스 옷을 사주고 테니스 모임에 더 자주 나가기를 권했습니다. 여전히 테니스 코트에 갈 때보다 집으로 돌아올 때 심히 우울했지만 떠밀리듯이 옷을 갖춰 입고 레슨과 모임에 터덜터덜 다녔습니다. 내 스스로가 불청객같이 여겨지고, 초라해지고 누군가에게 계속 미안해진다는 둥 이런 기분을 뭐 하러 계속 느껴야 하냐며 징징대면서 차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발걸음을 할 수 있었던 건 팔 할이 무궁씨의 응원과 테니스 코트에서 만나는 분들의 격려 덕분이었습니다. 
  ‘이번 게임에서 내가 기량을 얼마나 발휘했느냐’에 관심을 가지라는 조언과 ‘너무 쉬우면 재미없잖아’라는 말을 자주 생각하며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언니들이 열심히 손잡아 줄게’라는 정옥 언니의 말을 코트장에서 만나는 많은 분들로부터 몸소 경험하게 돼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코트장에 앉아서 또 쭈구리가 되어가고 있던 중 언젠가 무궁씨가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거기 있는 사람들도 다 효민씨 같은 시절 있었을 거예요.”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의 구김이 좀 펴집니다. 내가 너무 못해서, 민폐라서 어쩌지, 관둘까, 미안하기만 하던 마음 한 켠에 덕분에 오늘 재미있게 쳤다는 고마운 마음이 엉덩이를 슬쩍 들이밉니다.
  재미있게 살고 싶은 마음처럼 테니스도 그렇게 치고 싶습니다. 실력이 좋아야 재미있게 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력이 부족한 나를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압니다.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고마운 마음을 바탕에 두고 나에게 집중할 때 가능한 일이라는걸. 아, 거기서부터 시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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