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새미 등산기#8 오늘도 참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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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새미 등산기#8 오늘도 참 좋았습니다
  • 한들신문
  • 승인 2022.10.3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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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수천 평의 평원을 화려하게 수놓는 철쭉일 것이다. 5월 10일을 전후하여 피는 철쭉은 가히 장관을 이루고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철쭉에 버금가는 황매산의 치명적인 매력은 역광의 가을 햇살에 하얗게 반짝이며 일렁이는 억새가 아닐까. 전국으로 유명한 창녕의 화왕산, 밀양 간월산 억새에 비교하여 조금도 손색없는 황매산 억새. 붉은색 포장도로를 따라 양쪽으로 펼쳐진 억새군락은 우리를 아련한 동심의 세계로 인도하기에 충분하다. 가을의 정취에 좀더 푹 빠져 들어가고 싶다면 오른쪽 언덕으로 오르는 샛길을 택해 보라. 그대는 어느덧 한 마리 나비가 되고 시인이 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한새미가 매년 가을에 황매산을 찾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가을꽃의 대명사라 불리우는 구절초와 개쑥부쟁이를 보기 위해서이다. 지금은 지자체에서 곳곳에 구절초를 심어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고, 거창에서도 감악산 정상 일대에 구절초 밭을 조성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명소가 되었다. 그런데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인위적으로 가꾸어놓은 꽃보다는 온갖 비바람을 견디며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피워내는 자연 상태의 꽃에서 매력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스스로 자라고 피어나는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보기 위해서는 제일 위쪽 주차장 못 미쳐 언덕으로 올라야 한다. 넓은 평원 양쪽으로 <구절초>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저 멀리 몇 그루 외로이 서 있는 참나무와 대비되는 가을 황매산은 그야말로 맑고 깨끗한 그림 한 장이다. 그리고 보랏빛 <개쑥부쟁이>는 황매산을 오르는 초입부터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이어진다.  

 

  야생화에 좀 더 관심 있는 사람에게 황매산 가을은 감탄을 연발하는 꽃들로 가득하다. 제2주차장 위 왼쪽 계곡으로 접어들면 이름마저 어여쁜 <물매화>를 줄지어 만날 수 있다. ‘고결, 결백, 정조, 충실’이라는 꽃말대로 사치나 화려함에 물들지 않고 고결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이들을 만나면 어지럽던 마음이 어느덧 순수해짐을 느낀다. 5개의 순백의 잎 속에 빙 둘러 무리 지어 서 있는 수술, 그리고 그 끝에 달려있는 영롱한 꿀샘의 아름다움이여!  

   위쪽 주차장 좀 못 미쳐 언덕을 오르면서는 가을꽃들의 향연 앞에 숨죽이며 경건한 마음으로 다가서게 된다. 자주쓴풀, 쓴풀, 용담, 꽃향유, 앉은좁쌀풀, 산부추, 미역취, 등골나물, 이질풀... 그중에서 눈에 가장 많이 띄는 것이 <자주쓴풀>이다. 용담과에 속하는 이 꽃은 뿌리에 매우 강한 쓴맛을 가지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지각(知覺), 깨달음을 얻다’라는 꽃말대로 인생의 쓰디쓴 맛을 봐야 참된 깨달음에 이른다는 교훈을 얻게 하는 것 같다. 용의 쓸개처럼 맛이 쓰다 하여 이름 붙인 <용담(龍膽)> 꽃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긴 추억, 당신의 슬픈 모습이 아름답다’는 예쁜 꽃말처럼 곧 다가올 찬 겨울에 스러져 갈 것을 알면서도 의연한 모습으로 서 있는 모습이 눈에 시리다. 언덕을 오르다 보면 간혹 긴 줄기 끝에 여러 개의 꽃이 뭉쳐 있는 탁구공만한 적자색의 꽃을 볼 수 있다. <산부추>다. 우리가 즐겨먹는 부추와 같은 속(屬)에 속한 이 꽃은 주로 높은 산야에서 자라는데 간과 심장에 좋다고 하며 위를 보호하고 양기를 돋구는 한약재로 사용한다고 한다. 

 

  언덕을 오르는 초입에 건조한 땅에는 아주 작고 앙증맞은 <앉은좁쌀풀> 꽃을 만날 수 있다. 얼핏 보기에는 볼품없지만, 접사 렌즈에 담긴 꽃을 보노라면 자기만의 색깔과 독특한 꽃잎 모양이 놀라워 자꾸 보게 된다. 그리고 그 화려한 노란색 자태를 뽐내며 자신의 위상을 당당히 드러내는 <미역취>를 황매산 곳곳에서 만난다. 100여 종이 넘는 취나물 중에 참취, 곰취, 수리취, 누룩취, 미역취 등을 대표로 꼽는데, 그중에서도 <미역취>는 가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취나물이 아닐까.    

 

 

 

  억새와 야생화의 가을 기운으로 충만해진 가슴을 안고 황매산 정상(1,113m)에 올라 좀 전에 지나온 억새평원을 내려다본다면, 또 다른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산할 때 오른쪽 능선을 따라 삼봉, 전망대를 거쳐 수목원으로 원점 회귀한다면, 아마 그대는 더 이상 다른 것으로 채울 마음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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