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새미 등산기#10 오늘도 참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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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새미 등산기#10 오늘도 참 좋았습니다
  • 한들신문
  • 승인 2022.12.2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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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설경, 한라산

한겨울, 맵싸한 바람에 코끝이 시리고 진눈깨비라도 뿌릴 듯하면 한라산의 환상적인 설경이 떠오른다. 가까이에 있어 자주 가는 덕유산 눈꽃도 멋지지만 한라산은 눈 더미가 아예 다르다. 저 멀리 새파란 바다가 보이면서, 막힘없이 탁 트인 사방으로 새하얀 눈 천지! 2m가 넘게 쌓인 눈을 뽀득뽀득 밟으며 설국으로 빠져드는 한라산. 그래서 한새미는 겨울방학이면 한라산 등정을 꿈꾸며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한다. 


  남한 땅의 지리적 중심지(?)라 여겨지는 거창에서 한라산에 가려면 산 넘고 물 건너야 한다. 그래서인가, 한라산 첫 등반은 설악산보다 3년이 더 지난 2002년에야 이루어졌다. 처음 만난 한라산의 감동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관음사에서 출발하여 탐라계곡에 들어서니 마치 눈꽃 축제를 벌려놓고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너무나 아름다운 설경이 펼쳐지는 게 아닌가. 나뭇가지 끝에 영롱하게 매달려 햇빛에 반짝이는 눈꽃들이 산수유인 듯도 싶고, 매화가 봉우리를 초롱초롱 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계곡으로 접어들수록 눈은 나무 전체를 흰옷으로 감싼 듯 뒤덮고 있는데, 얇은 옷을 입은 꽃, 두꺼운 옷을 입은 꽃, 종 모양으로 송이송이 달려있는 눈꽃들에 우리는 환호성을 연신 질렀다. 

  또 다른 날, 성판악을 출발해 1시간여만에 만난 삼나무 숲의 비경도 동화마냥 신비로웠다. 새하얀 눈밭 위로 쭉쭉 뻗은 삼나무가 파란 하늘을 이고 있고, 나무 사이로 일렁이는 밝은 햇살.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던 눈꽃터널을 걷노라면 가히 환상의 한라산이라 할밖에.  
    

 

  첫 번 산행에는 광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갔고, 그 후에는 주로 부산에서 11시간 걸리는 밤배를 타고 갔다. 두 번째 산행 때 우리가 탄 배는 금강산 유람선이던 설봉호. 승객 1천 명을 실을 수 있고, 식당은 물론 온갖 편의 시설과 오락시설이 갖춰진 배였다. 산골 사람이 배 타기를 즐길 줄 아는지 출렁출렁하는 게 요람처럼 느껴져 재미있더라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해 전라남도 고흥에서 2시간 30분 걸리는 페리호를 탈 때는 뱃멀미로 엄청 고생하기도 했지만.  

  2006년 겨울, 한라산에는 어마어마하게 눈이 내렸다. 장소에 따라 2미터 3미터 쌓인 곳도 있어서 우리는 눈구경을 실컷 할 수 있었다. 제주 사람들도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건 몇십 년 만이라고 했는데, 제설 차량이 제설 도중 눈에 파묻힐 정도였다. 등산 코스는 관음사(해발 400m)에서 출발하여 8.6km를 걸어 정상 도착 후 성판악으로 9.5km를 걷는 종주 코스. 용진각 대피소 화장실이 눈에 잠겨 지붕만 남았고, 큰 나무들도 눈에 파묻혔다. 우리가 그 옆을 걸었으니 거의 땅에서 2~3미터 공중을 떠다닌 셈이다. 등산로를 조금만 비켜나도 사정없이 눈더미에 빠져버려 혼자서는 빠져나오기가 힘들었다. 옆에 누군가가 도와주어야만 겨우 눈구덩이를 탈출할 수 있었는데, 구덩이를 쳐다보면 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깊었다. 

 

  주말과 겹쳐서일까, 한라산 설경을 보기 위해 엄청나게 몰려든 등산객들로 인해 온 산이 하루 종일 붐볐다. 사람에 채여서 기다렸다 오르기를 반복하다 보니 산행 속도도 늦어지지만 체력 소모도 컸다. 백록담 정상에도 밀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인증샷만 찍고 서둘러 내려와야 할 정도. 기어이 일행 중의 한 사람이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 며칠 동안 잠을 못 잔 채로 산행길에 올랐다니, 컨디션도 안 좋은 데다 사람에 치여 무리가 온 것이다. 산악구조대를 불러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2팀으로 나누어 하산하기로 했다. 한 팀은 예정대로 내려와 밤배를 탔고, 남은 2명은 천천히 천천히 걸어서 내려왔다. 깜깜한 어둠 속을 눈(雪)빛으로, 달(月)빛으로 걸어서 7시 30분에 겨우 하산 완료. 그래도 힘을 내어 스스로 걸어왔으니, 다행한 일이었다. 물론 그날 밤의 부산행 배와 대구행 비행기는 모두 놓치고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돌아왔다. 준비되지 않으면 허락하지 않는다는 산이 주는 교훈을 다시 한번 깨우친 날.      

  어느 산행에서는 제주의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겪어본 적도 있었다. 산행 첫날 쾌청한 날씨로 설경을 만끽하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는데, 둘째 날은 날씨가 급변했다. 배 출발시각에 맞춰 윗세오름까지 한나절 등산을 더할 예정인데,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거였다. 비는 점점 거세어져서 비바람이 얼마나 몰아치는지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악천후였다. 날아가려는 비닐 우의를 꽁꽁 여미며, 미끄러운 눈밭을 아슬아슬 걸었다. 진눈깨비와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장갑은 완전히 젖어 손이 얼마나 시렸는지. 시속 200km가 이 정도일까 싶게 느껴지는 강풍에 순간 사람이 날아가 눈 구덩이에 그대로 빠지기도 한 날이었다. 한새미에게 한라산은 이토록 짜릿하고도 아찔한 추억의 산이 되었다.   
  다시 돌아온 겨울, 여전히 우리는 한라산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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