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와 함께하는 어린이 책 여행 (122) 「염소 시즈카의 숙연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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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와 함께하는 어린이 책 여행 (122) 「염소 시즈카의 숙연한 하루」
  • 한들신문
  • 승인 2022.11.3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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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 김은옥

“씩씩한 노래를 부르기 위해”

 

다시마 세이조 글·그림 / 황진희 옮김 / 책빛 / 2022
다시마 세이조 글·그림 / 황진희 옮김 / 책빛 / 2022

 

며칠 전 저는 노고단에 올랐습니다. 성삼재까지 올라가는 길은 가을 끝자락이기는 해도 여전히 단풍이 이뻤습니다. 노고단 정상에 오르자 운해가 차올랐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카메라에 다 담을 수도 없었습니다. 구름의 바다는 하늘의 세계로 인도했습니다. 낑낑거리고 어렵게 올라갔지만 올라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여기 오른 사람만 운 좋게 보는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노고단 정상에는 저를 포함한 3명의 우리 일행만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 온 세상이 조용합니다. 
  노고단 정상에는 솜사탕 기계에서 나오는 실 같은 구름 가락이 바람에 흩어지고 그 모습이 장관이었습니다. 장엄하고 숙연한 순간이었습니다. ‘숙연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고요하고 엄숙하다’입니다. 

  그림책에 ‘숙연한’의 의미를 담은 책이 있습니다. 바로 《염소 시즈카의 숙연한 하루》입니다. 이 책을 쓴 다시마 세이조는 지난 5월 31일, 파주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2층 정보도서관에서 북토크를 했습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각각의 인생은 모두 숙연하다’라는 말을 하며 오오시마 섬에 갇혀 살아야 했던 한센병 환자들을 소개했습니다. 다시마 세이조는 평생을 섬에 갇혀 인간으로서의 존중을 받지 못하고 살았던 이들의 실상을 알리는 프로젝트를 실행했습니다. 설치미술 작품으로서 한센병 환자의 격리된 섬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 책을 낸 책빛 출판사 블로그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booklight/222757632392) 

  염소 시즈카는 다시마 세이조가 어릴 때 직접 기른 염소입니다. 작가는 시즈카를 주인공으로 한 《염소 시즈카》를 비롯하여 《뛰어라 메뚜기》, 《모르는 마을》, 《채소밭 잔치》, 《쿨쿨쿨》 등의 자연과 생명, 평화를 주제로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책에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의 생기발랄함과 자연과 생태를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 있습니다. 그는 또 ‘풀과 나무 열매 미술관’을 2009년 도카마치 시의 산골 마을에 개관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폐교된 사나다 초등학교를 거대한 그림책으로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이 학교에 다녔던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어지게 공간을 꾸몄습니다. 설치 작품들은 바닷가에 떠내려온 나무를 모아 색을 칠해 만들었습니다. 저는 몇 년 전 이곳을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교실마다 이야기를 꾸며 환상의 세계를 경험하게 합니다. 운동장에 시즈카의 후손인 염소 두 마리가 살고 있으며 밭에는 여러 가지 채소를 직접 키우고 있습니다. 
  다시마 세이조는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 그래픽 상을 수상했습니다. 한·중·일 평화그림책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사계절/2012》를 내었습니다. 권윤덕의 《꽃 할머니/사계절/2010》이 일본에서 제때 출판되지 못하자 출판되는데 큰 노력을 했습니다. 

  이 책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염소 시즈카는 어느 날 아침, 강에서 메기를 만납니다. 메기는 마음이 숙연해지는 노래를 불러줍니다. 그러나 그 노래의 뜻을 알 수 없었습니다. 시즈카는 언덕에서 숙연해지는 게 뭔지 생각을 하는데 매미가 나무에서 떨어지고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시즈카는 거미줄에 눈부시게 빛나는 이슬방울을 발견합니다. “넌 이토록 아름다운데 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반짝이니?”라고 물어보지만 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시즈카는 채 피지 않은 꽃봉오리를 먹어버리고 꽃봉오리와 노래를 부르지 않는 매미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빛나는 이슬방울을 생각하며 훌쩍입니다.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와 메뚜기, 메추라기, 두꺼비와 함께 ‘씩씩해질지도 몰라!’ 노래를 부릅니다. 

“박자도 제각각인 씩씩한 노래가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갔어요.”

  어린이는 질문이 많습니다. 자연에, 세상에, 생명에, 죽음에 관한 질문을 자연스럽게 합니다. 그런 질문이 있을 때 우리는 생각하고 고요해지고 엄숙해집니다. 숙연해집니다. 자신의 존재에 관해, 관계에 관해,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피지 못한 죽음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때 더 그러합니다. 또한 드러나지 않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비로소 주변을 돌아볼 줄 알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어린이의 세상을 향한 질문에 어른은 성실히 답해야 합니다. 어른이 어른 노릇을 해야 합니다. 잘 드러나지는 않으나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게 심미안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심미안을 기르는 일은 안목을 키워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린이와 젊은이는 생명이 깃든 모든 것에 숙연해지고 진정한 아름다움에 눈을 뜨고자 합니다. 

  더 이상 어린이·젊은이에게만 금기하는 세상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어린이·젊은이는 잘 보이지 않지만 아름답습니다. 채 피어나지 못한 목숨에 숙연해야 합니다. 수학여행도 가지 못하게 하고 현장학습도 안된다 하고, 특히 사람 많은 데는 절대 안돼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안전한 사회를 위한 실천에 힘을 쓰고 안전한 사회를 보장해야 합니다. 어린이·젊은이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씩씩해져야 합니다. 이 그림책은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죽어가는 생명에 대해, 채 피어나지도 못한 생명에 대해 말합니다. 모든 생명은 숙연하지만 박자도 제각기인 씩씩한 노래가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간다고요. 오늘 하루 이 그림책과 함께 숙연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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