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와 함께하는 어린이 책 여행 (123) 「시인 아저씨, 국수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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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와 함께하는 어린이 책 여행 (123) 「시인 아저씨, 국수 드세요」
  • 한들신문
  • 승인 2022.12.12 1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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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 이정윤

“그랬으면 좋겠네!”

신순재 글 / 오승민 그림 / 천개의 바람 / 2022.01
신순재 글 / 오승민 그림 / 천개의 바람 / 2022.01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계절, 겨울이 왔어요. 예쁜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반짝 불을 밝힙니다.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도 들러 선물을 줄까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길 것만 같아요. 혹시 누구를 초대해 보면 어떤가요? 그 사람이 시인이라면요.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라는 ‘백석’ 시인이 있어요. 월북 작가여서 처음 들어보는 작가일 수도 있겠네요. ‘서시’로 너무도 유명한 윤동주 시인이 좋아했던 시인이라고 해요. 오늘은 백석 시인의 <국수> 시로 여러분을 만나볼게요. 뜨끈한 국수 한 그릇으로 온기를 나누어보아요.

  글을 쓴 신순재 작가는 
‘나라를 빼앗기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떠돌던 시인을 불러다가 그 좋아하던 메밀국수 한 그릇을 먹이고 싶은 마음에서 이 책을 기획했습니다.’ 
  그림을 그린 오승민 작가는
‘사람들끼리 만날 수 없는 이 시대에 백석의 시가 온기가 되길 바라봅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그럼 책 속으로 들어가 볼게요.

  표지 그림에 시인 아저씨와 아이가 눈을 맞추고 있어요. 대접을 들고 있는데요. 은은한 노란빛이 번지고 있는 그림이 따숩게 느껴져요. 책장을 펼치니 엄청난 눈이 산골 외딴집에 내리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고개 넘어 장에 가고 엄마하고 나만 무서운 밤, 오줌이 마려워 잠이 깼는데 엄마가 보이질 않아요. 방문을 열어보니 부엌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나옵니다. 노오란 불빛이 참 따스해 보이는군요. 커다란 가마솥에 물이 펄펄 끊고 있어요. 한쪽엔 메밀가루 자루가 그득 있고요. 

“누가 와요?” 

  물어도 엄마는 웃기만 하네요. 
  웬 장사꾼 아저씨들이 마당으로 들어옵니다.

“어서 오세요. 국수 드시고 가세요!”

  다음으로 고모, 삼촌, 동갑내기, 증조할머니, 손자, 증손자가 옵니다. 
  엄마가 서둘러 메밀 반죽을 합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거친 비탈길에서도 잘 자란 메밀입니다. 
  그다음으로 가증랑집 할머니가 멧돼지, 승냥이, 여우, 구렁이만 한 지렁이를 데리고 옵니다. 엄마는 메밀 반죽을 국수틀에 밀어 넣었습니다. 
  국수가 푹푹 익어갈 때, 아름다운 여자가 흰 당나귀를 타고 왔어요. 여자는 자꾸만 문밖을 뒤돌아봅니다. 꼭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요.
  그때 누가 비틀비틀 걸어왔어요. 눈이 부리부리하게 잘생긴 아저씨는 무척 지쳐보여요. 무언가를 찾아 오랫동안 혼자 떠돌았다고 해요.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 아저씨는 시인이라고 했어요.
  시인 아저씨를 아랫목에 앉히고 엄마는 왕사발에 국수를 말아 내밀어요. 

함박눈이, 호랑이 같고, 곰 같고, 소 같은 얼굴들이, 주정뱅이 삼촌, 얼굴 얽은 고모, 뻐드렁니 동갑내기가, 할머니, 할머니의 할머니가, 승냥이, 여우, 멧돼지가, 구렁이만한 지렁이가, 가즈랑집 할머니가, 아름다운 나타샤가, 흰 당나귀가, 엄마가, 그리고 내가 말했어.

“시인 아저씨, 국수 드세요!”

  그다음 장에 시인 아저씨가 국수를 먹고 눈을 감아요. 편안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장면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 겨울. 따스함을 우리 서로 나누기로 해요.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 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 백석 <국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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