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조용한 날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월드컵 광풍 속에서 한국이 16강은 진출했지만 8강의 문턱을 넘지 못해서인지 관심이 많이 줄어듦과 동시에 안전운임제 관련한 민주노총 산하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파업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요즘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응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대화나 타협을 공공의 적을 대하듯이 한다. 국민의 눈높이로 봤을 때 이태원 참사부터 시작해서 뭐하나 제대로 풀려나가는 게 없는 듯하다. 우리네 삶도 팍팍하고 나아질 것 같이 보이지도 않고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이 되풀이되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한다. 이럴 땐 잠시 쉬어가야 하는 지혜도 필요하지 않을까? 
  요즘 MZ세대는 혼자 집에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의 전화를 받지 않는 비율이 거의 50%에 육박한다고 한다. 문자로 소통할 경우 생각할 시간과 여유가 있지만 통화의 경우 바로 답을 원하는 경우가 많아 감정 소모가 극심하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뒤돌아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렸던 우리 세대와는 달리 나름 힘든 삶 속에서 자신들만의 쉼표를 만들어 가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는데 제목이 특이해서 손이 가는 책이 눈에 띄었다. 김신희 작가의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라는 제목인데 보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얼마나 삶에 지치고 힘들었으면 저런 글을 쓸 생각을 다 했을까? 작가는 방송용 대본을 쓰는 사람인데 어느 날 손목에 이상이 와서 글도 못쓰고 노는(?) 과정에 생긴 몇 가지 에피소드로 현대인들의 압박감과 강박감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나름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었다. 
  쉴 때 쉬는 방법을 모르고, 충전을 위한 휴식임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왠지 경쟁에 뒤처지게 만든다는 원천적인 압박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의 심리 상태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먹고 싶은 딸기 한 팩을 갈등 끝에 이만 원을 주고 사 와서 입이 미어지도록 먹고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는 작가의 에피소드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지금도 방영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지만 자연인 프로그램 재방송을 보다가 모처럼 나를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멘트가 나왔다. 산에 사는 출연자가 자신의 인생 신조를 말하는데 그게 “가능하면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자”였다. 그리고 대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오늘 마음껏 하고 산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게 이런 게 아닐까? 물론 매일매일 할 일을 미룰 수는 없다. 그러나 쉬고 싶을 때,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는 열 일 제쳐 두고 하는 게 또한 사람 사는 맛이 아닐까? 
  나는 귀농하기 전 직장 생활을 할 때 주말이면 배낭을 메고 전국의 산을 돌아다녔다. 직장 생활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산이 주는 위안과 걷기에 집중하는 그 순간의 매력에 완전히 푹 빠졌었다. 거창을 귀농지로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도 높은 산이 많다는 것이었다. 기백산, 금원산을 비롯해 남덕유산까지 품고 있는 품고 있는 거창은 산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신천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실제 귀농 후 내가 오른 거창의 산은 손가락을 꼽는다. 농사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 말은 완벽한 농사를 전제할 때 말이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 살 때와 같이 나에게 허락된 시간을 주려고 노력하지만 현실적으론 쉽지 않다. 특히 사과 농사의 빅 이벤트인 전정, 수확, 적과 작업 시기에는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그럴수록 억지로라도 나에게 오롯한 휴식의 시간을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나에게 휴식을 주어야 재충전이 되고 그것이 생활의 활력으로 다시 되돌아올 테니 말이다.
  때로는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살아가는 지혜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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