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띄우다】 흔들리지 않는 경계인의 추는 공정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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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띄우다】 흔들리지 않는 경계인의 추는 공정함이다
  • 한들신문
  • 승인 2023.01.0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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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편지 집배원, 염민기 시인

경계인의 추는 흔들리지 않는다

김상인

 

지인이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아야 했어
검은 안경을 낀 사내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뚜벅뚜벅 말뚝 곁으로 걸어갔어
공정성을 잃었다는 사내는 눈동자 돌리며
가만히 있는 말뚝에 발로 삿대질 하는 거야
내 이름은 측량대의 깃발이 펄럭이는 동안
사유재산권 보호라는 명제에 없어지는 거야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말목이 사내 쪽으로 기울었다는 거지
바람도 불지 않았고 기점도 정확했어
입회인들은 지적측량사를 경계인으로 보거든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까 언행에 꼬투리를 잡고
이젠 나에게 삿대질을 시작하는 거야
‘왜? 오차를 손끝에 달고 다니느냐!’
나는 두 손을 흔들어 보지만
상대의 홍안은 가라앉지 않았어
검은 안경을 낀 사람은
세상이 모두 검게 보이거든
모든 사람들이 색안경으로 말뚝을 바라보아도
난 다시 깃발을 들고 산하를 누벼야 해
경계인의 추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경계인의 추는 흔들리지 않는다, 2016』


시인은 40여 년 대한지적공사(현 한국국토정보공사)에서 근무했다. 시 ‘경계인의 추는 흔들리지 않는다’ 의미는, 경계境界가 곧 경계經界인 것이다. 
  지적측량 중에서도 특히 경계측량은, 현장의 경계인 말목 표시가 곧 사유재산권과 직결된다. 지적측량사로서 엄중한 공정성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간혹 토지 이해관계인들이 편향된 색안경을 끼고, 경계 표시에 불만을 표출하는 현상을 본 체험에서 김 시인은 결코 공정성을 잃지 않으려는 자신을 표현한다. 
  전국 대학교수들이 올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꼽았다. ‘논어 위령공편’에서 공자는 “과이불개, 시위과의”라고 말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잘못이다’라는 의미다. 시인이 시에서 말한 공정함이다. ‘모든 사람들이 색안경으로 말뚝을 바라보아도’ ‘경계인의 추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공평, 올바름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사와 다난했던 한 해도 갔다. 오는 새해는 김 시인이 말한 ‘공정함’이 경계의 말목 표시가 되는 한 해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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