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과 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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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과 관용
  • 한들신문
  • 승인 2023.04.1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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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신용균

역사는 뒤틀린 관계로 가득 차 있다. 때로 파탄에 이르고 혹 무시되지만, 종종 회복된다. 조건은 반성과 용서다. 백이 숙제가 원망 받지 않은 것은, 반성하면 그 잘못을 잊었기 때문이다. 전후 프랑스와 독일이 친선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의 반성과 프랑스의 관용 때문이다. 반성 없는 관용은 불능이며, 관용 없는 반성은 무용이다. 최근 대일 외교가 그렇다.

  독일과 일본은 똑같이 전범국이다. 2차 세계대전 때, 양국은 동맹을 맺고, 각각 유럽과 아시아에서 침략전쟁과 대량학살을 자행했다. 독일의 유대인 학살은 워낙 유명하거니와 일본의 동원과 학살도 그에 못지않았다. 남경대학살은 상상 그 이상이며, 종군위안부는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야만적 행위였다. 두 나라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패전 후 과거를 대하는 자세였다.

  3년 전, 독일 총리가 일본을 비판했다. “과거를 직시하라!” 외교 용어로는 신랄한 비판이다. 독일은 패전 후 과거 나치 정권과 완전히 단절했다. 결정적으로는 1970, 브란트 독일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게토 봉기 영웅기념물에 헌화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때 독일의 진정성은 유럽인뿐만 아니라 자국민에게도 깊이 각인되었다. 독일의 반성과 사과는 지금까지 매년 반복되고 있다. 폴란드를 향한 태도가 대표적이다.

  폴란드는 독일로부터 가장 큰 피해를 받은 이웃 나라였다. 히틀러의 침략이 1939년 폴란드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었던 곳도 폴란드였다. 6백만 명의 폴란드인이 희생당했다. 그 이전의 역사도 그랬다. 강대국에 의한 영토 분할의 역사였다. 18세기 말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 의해 3차에 걸쳐 영토를 분할 점령당하고 결국 해체되었다. 1백여 년 뒤 독립했으나 다시 1,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러시아에 의해 되풀이되었다. 폴란드의 원한이 깊었다. 독일은 어떻게 풀었을까.

  독일은 폴란드에 영토를 돌려주었다. 독일의 슐레지엔, 동프로이센 지역이 폴란드 영토가 되었다. 그 밖에 경제 자금 지원, 강제징용자 배상도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더 주목받는 것은 역사 교과서 공동 집필이다. 두 나라가 함께 역사 교과서를 쓰고 함께 가르치자는 것, 가해자와 피해자가 역사 인식을 공유하기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1972독일-폴란드 교과서 위원회가 조직된 후 수많은 난관을 뚫고 2020년 마침내 첫 권을 출판했다. 집필에만 12년 걸렸다. 최근 독일은 프랑스와 이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은 독일과 달랐다.

  일본은 대일본제국의 적자였다. 그릇된 과거를 청산하지 못했다. 1945년 패전 당시, 일제는 천황제유지를 항복조건으로 내걸어, 전범 제1호 일왕은 처벌받지 않고 살아남았다. 미군 점령기, 잠시 민주주의와 평화 헌법을 지향했으나 1949년 중국 공산화를 계기로 과거로 복귀해 전범 정치인과 전범 기업이 부활했다. 소위 역코스,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자민당 정권이 대표적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은 있을 수 없었다.

  역사학으로 보면, 식민사관이다. 이른바 일제의 침략으로 조선이 근대화되었다는 근대화론’, 조선 역사는 발전이 없었다는 정체성론’, 조선이 망한 것은 당파싸움 때문이라는 당파성론’, 조선은 반도에 위치하여 중국의 지배를 받거나 일본의 지배를 받아 한 번도 독립국이 되지 못했다는 반도성론’, 조선은 만주의 일부였다는 만선 사관등이다. 일제의 역사 왜곡은 악랄했고, 지금까지 되뇌고 있다. 그들에게 침략은 진출이고, 강제 동원은 지원이며, 독도는 일본의 영토. 반성이 없으니, 사과 또한 가식일 뿐이었다.

  이번 방일 후, 일본의 대응이 가관이다. 개정된 역사 교과서는 더욱 왜곡되었다. 강제 동원은 없었고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날마다 외치고 있다. 반성하지 않는 자의 필연적 소행이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것은 그 짓을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일본의 침략주의 속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거기에다 지소미아의 부활과 핵 오염수 방류, 그 해산물 수입 요구까지. 불편한 이웃이다. 관용은 위대하다. 그러나 반성 없는 자에 대한 관용은 이용만 당할 뿐이다. 이번 방일 외교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성인인가, 바보인가, 아니면 친일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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