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민주주의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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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주주의 전통
  • 한들신문
  • 승인 2023.06.0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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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신용균

기념일이 많은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역사에서 성취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봄에는 기념일이 많다. 3·1운동과 4월혁명, 5월 광주와 6월 항쟁, 한국의 민주주의가 성취된 과정이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오늘, 선거로 뽑힌 최고 공직자가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겠단다. 민주주의는 광범위한 자유를 보장하지만, 민주주의를 파괴할 자유는 없다. 또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역사를 거스르면 불행이 뒤따른다.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정치제도다. 그러나 약점이 있다. 가능성을 보고 투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선 이후를 보증하지 못한다. 선거로 당선되고도 독재자가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일찍이 민주주의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고대 민주정치의 발상지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 플라톤도 민주정치를 부정했다. 오히려 유학자의 생각이 민주주의에 가까웠다. 

  천명사상이다. 천자는 하늘의 명령에 따라서 지배자가 된다는 사고방식이니, 민주라고 이름 붙일 것도 없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르다. 하늘이 곧 백성이라고 했으니, 결국 왕을 임명하는 것은 백성이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이 천명사상이 한국의 전통 정치사상이었다. 따라서 조선 시대, 장차 왕이 될 세자는 천명에 부합되기 위해 철저한 교육을 받았다.
  서연이다. 서연은 세자의 교육제도였다. 조선왕조는 세자시강원을 두고 오전, 오후, 저녁, 하루에 세 차례씩 세자를 가르쳤다. 교사 또한 당대 최고의 학자였다. 최고 사부는 정승이었고, 관료와 재야의 저명한 학자를 스승으로 모셔 강의를 받았다. 또 세손시강원을 두어 세손을 교육했다. 즉위 후에도 교육은 멈추지 않았다. 경연이니, 왕은 매일 세 차례씩 교육을 받았다. 그 속에서 끊임없이 왕의 심신 수행과 정책 검토가 행해졌다. 조선왕조가 5백 년 동안 유지된 이유 중 하나다. 여기에 더하여 제도적 장치도 있었다.

  언관이다. 언관이란 간쟁하는 관리, 즉 왕의 실정이 있을 때 따져 묻는 관리이다. 사간원과 사헌부가 대표적이었다. 전제정치 속에서 최고 권력자를 견제하는 제도를 둔 것은 놀라운 일이며, 동시에 지혜로운 일이다. 이를 통해 불합리한 정책이 걸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의 힘은 제도의 장치를 넘어선다. 권력자에 저항하는 일은 항상 위험하다. 언관은 종종 귀양 가고 쫓겨났으며, 또는 스스로 물러나 지조를 지켰다. 이때 나선 것이 재야의 선비였다.

  종종 성균관 유생이 시작했다. 성균관은 조선시대 국립대학으로 장차 관리가 될 유생들이 공부하는 곳이었다. 왕이 언관을 거부하고 불합리한 정책을 강행하면, 성균관 유생들이 상소에 나섰다. 그들은 광화문 앞에 연좌하여 시위를 벌였고, 무력으로 진압당하더라도 굴복하지 않았다. 흔히 이 정도면 왕이 고집을 꺽지만, 그렇지 않으면 전국의 유생들이 나섰다. 그들은 연명하여 상소했는데, 많은 경우 1만 명에 달했다. 소위 ‘만인소’다. 이를 일컬어 언론이라고 했으니, 오늘날 언론이란 말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언론이 한 단계 발전하면 여론이 된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조선시대 중앙정계의 소문은 상당히 빨랐다. 그래서 ‘소문은 역마보다 빠르다’고 했다. 당시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 역마였다. 파발마로 달리면 하루에 300Km를 가니, 전국 어디서든 하루면 한양에 이르렀다. 소문이 이보다 빠르다고 했으니, 민심과 여론은 속일 수 없었다. 그리하여 민심이 임계치를 넘어서면 민중이 움직였으니, 곧 ‘민란’이다. 왕의 눈에는 ‘반란’이었으나, 민의 처지에서 보면 정당한 권리의 주장이요, 봉기였다.

  한국인은 민권 사상과 민중 봉기의 전통을 지녔다. 그 속에서 민주주의를 이룩했다. 동학 농민전쟁 때 보국안민의 깃발을 우뚝 내걸었고,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 때 민주 토론의 전통을 창출했다. 3·1운동으로 조직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민주공화국의 이정표를 세웠고, 4월 혁명으로 독재자를 축출했다. 광주항쟁에서 군부독재에 굴하지 않았고 6월항쟁으로 민주주의를 완성했다. 한국인이 누구인가? 이 전통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 최고 권력자가 민중의 대표조직인 노동조합을 ‘조폭’으로 내몰고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시도는 전통에 반하고 역사에 반하니, 결과 또한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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