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소멸과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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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소멸과 거창
  • 한들신문
  • 승인 2023.07.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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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신용균

 

지역 소멸이 현실이 되었다. 거창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이 다 그렇다. 그러니 특혜를 내걸어도 효과가 없다. 근래 거창군의 노력이 애처롭다. 이장들에게 인구 전입을 할당하더니 또 공무원에게 그렇게 했다. 결과가 인근 군보다 낫다는 자평이고 보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한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같지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와 같지 못한 법이다. 맹자의 말이다.

 

거창은 예로부터 잘 사는 동네였다. 그래서 이름조차 거창(居昌)이다. 신라 경덕왕이 지었으니 적어도 그때부터는 잘사는 동네였다. 지금도 인근 지역보다 군세가 낫다. 인구도 그렇고 자본도 그렇다. 왜일까? 면적과 농토가 합천이나 함양보다 나을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거기에는 옛 기반이 있었다. 거창은 역사적으로 세 번 크게 성장했다. 그 첫 번째는 삼국시대였다.

 

신라와 백제의 쟁패기, 신라의 김유신은 거창 땅에서 백제와 싸웠다. 당시 거창의 이름은 거열, 이곳에서의 전투는 중요했다. 신라는 거창 땅에 전쟁 총사령부를 두고 그 이름을 거열주라고 했다. 이때 거창 땅은 처음으로 전국적으로 주목받았고, 또 전국적인 지역이 될 기회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신라는 거열주를 진주로 옮기고 거창 땅에는 거열군을 두었다. 첫 기회는 이렇게 무산되었다. 다음 성장은 1천여 년 후에 왔다. 이번에는 경제였다.

 

조선 후기, 거창의 농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모내기법 때문이었다. 모내기는 엄청난 소득 증대를 가져왔다. 정약용에 따르면, 수익이 12배로 증가한다고 했다. 거창은 모내기에 최적지였다. 필수 조건은 물, 거창은 물이 풍부하기로 유명했다. 또 토지도 알맞았다. 오늘날과 달리 당시 좋은 논은 계곡 사이의 작은 평지였다. 곧 거창은 곡창이 되었고, 지금의 보와 봇도랑은 대체로 그 당시에서 비롯되었다. 거창 인구는 거의 6만 명에 육박했으니, 지금의 인구와 비슷해졌다. 세 번째 성장은 역설적이지만 비극에서 비롯되었다.

 

1900년대 초, 거창은 항일투쟁의 최전선이었다. 이유는 산악지대, 전국의 의병이 일본군에 쫓겨 덕유산으로 밀려왔다. 일본군 토벌대도 왔다. 일제는 거창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도로를 개설하고 검찰과 법원을 두었다. 졸지에 경남 서북부의 중심이 된 것이다. 이 지위는 식민지 시대 내내 유지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거창은 교통의 중심지가 되고, 동시에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거창시장은 보부상을 통해 서북 경남 일대의 상권을 장악했다. 이러한 성장은 해방 후까지 계속되었으니, 한때 13만 인구의 토대였다.

 

거창이 성장했던 요인은 한결같이 지리(地利)였다. 즉 땅의 이로움 때문이었다. 경계지역 때문이었든, 비옥한 농토 때문이었든, 험한 산악지역 때문이었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재, 거창의 이점은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 예컨대, 교통은 이미 함양이 중심이다. 3개 노선의 고속도로가 지나가니 거창이 교통요지라는 위상은 함양으로 넘어갔다. 철도는 합천을 지나간다. 식민지 시대 선조의 노력으로 거창을 지나가기로 계획되었던 노선이었다. 통신도 마찬가지, 서북 경남의 인터넷 허브는 오래전에 함양에 구축되었다. 거창은 이제 교통과 통신의 성장 동력을 상실했다. 지리적 이점이 사라졌다는 말이다.

 

여기까지가 지리(地利), , 성장론자, 지역개발론자의 한계다. 새로운 추동력은 무엇일까? 맹자의 말을 빌리면 인화(人和). ‘사람들이 화합한다는 뜻이다. 옛사람들은 그 방법을 예악에서 찾았다. ()란 예절이니, 각각 분수를 지킨다는 뜻이요, ()은 음악이니, 이를 통해 조화를 이룬다는 뜻이다. 이것이 상명하복의 신분제 사회에서 조화를 이루어내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다르다. 지금은 신분제가 사라진 평등사회, 그것도 민주주의 사회다. 민주사회에서 조화를 이루는 방법은 소통과 참여다.

 

구체적으로 토론이다. 주민이 토론을 통해 활동의 주인공으로 서는 것이 화합의 본체다. 군의회가 그 역할에 적합하다. 시작은 간단하다. 예컨대, ‘예산안 심의와 표결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주민들의 창의력과 활동력이 고양될 것이다. 새로운 발상과 방안이 솟아날 것이며 자연스럽게 실천 주체가 형성될 것이니, 지역소멸시대를 돌파하는 힘이 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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