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역사
상태바
권력과 역사
  • 한들신문
  • 승인 2023.10.16 11: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학자 신용균

권력은 역사를 욕망한다. 전자는 현재를 지배하지만, 후자는 미래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 후기 역사학자 안정복은 재상은 현재 권력이고 사관(史官)사후 권력이라고 했다. 권력과 기록의 사이가 역사 왜곡이 일어나는 지점이다. 객관적인 기록은 한국의 전통인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객관적 역사의 전제다.

  세종 때 일이다. 태종실록이 완성되었을 때 왕이 열람하려고 했다. 신하들이 반대했다. 왕은 정사에 참고하려 한다고 말했다.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신하들은 완강했다. 결국, 세종은 실록을 보지 못했다. 후대 왕도 마찬가지였다. 역사 기록의 정확성과 객관성은 사초부터 실록까지 권력자의 간여를 배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 있다. 사관의 지조였다. 사관은 문과 장원급제자 중 문필에 재주가 있는 꼿꼿한 선비들로 가려 뽑았고, 그들은 권세에 굴하지 않고 사실대로 기록했다. 사관의 직필은 양반 귀족뿐만 아니라 국왕도 두려워했다. 조선왕조실록 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도, 한국의 기록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홍범도 장군 동상 철거나 일제 지배, 반공 독재 찬양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늘날 역사학자가 이 일을 한다. 역사학자는 사료 비판을 통해 과거를 사실대로 재현해 낸다. 이는 역사학자의 일차적인 임무로, 랑케가 말한 사실로서의 역사이다. 이렇게 실증된 사실에 근거하여 평가가 이루어지고, 역사책에 실린다. 지금 정부가 문제 삼고 있는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는 역사가의 연구가 이루어진 지 오래다. 간단히 정리한다.

 

홍범도는 함경도 포수 출신, 의병을 결성해 일제와 싸우다 힘에 밀려 국경을 넘어 독립군이 되었다. 19193·1운동이 일어나자, 홍범도에 대한 독립군은 일본군을 공격하고 봉오동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일본군이 총공세를 취하자, 그는 김좌진, 최진동 등 독립군 대장과 연합하여 다시 청산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1920, 일제는 간도에 군대를 파견하여 한민족을 학살했다. 이른바 간도참변, 독립군은 견디지 못하고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하여 노령으로 이동했다.

  노령은 러시아 땅이라는 뜻,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성립한 소련은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독립군의 노령 이동은 그들의 지원을 받기 위한 것, 그러나 여기서 비극이 일어났다. 독립군 사이에 주도권을 둘러싸고 내분이 발생했고, 여기에 소련군이 개입하여 대한독립군단이 해체되고 일부는 소련군에 편입되었다. 이른바 1921년 자유시 참변이다. 이때 홍범도 장군은 독립군 지휘권을 잃었다.

1923년 이후 홍범도는 연해주에서 농사를 짓고 양봉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가 소련공산당에 입당한 것은 1927년이었다. 이때 나이가 환갑, 주위에서 공산당 가입을 권유했다. 명예 군인으로 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1929년부터 연금을 받았다. 1937, 소련은 연해주의 한민족을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시켰다. 홍범도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로 이주당했다. 거기서 병원 수위, 극장 수위를 하며 말년을 보냈고, 1943, 75세로 숨졌다. 여기까지가 역사적 사실이다.

  5년 전, 육군사관학교는 무장독립투쟁의 영웅 다섯분 동상을 세웠다.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 선생, 봉오동 청산리 대첩의 주역 홍범도 김좌진 장군, 광복군을 이끈 이범석 지청천 장군이다. 이 중 홍범도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려는 것이다. 소련공산당에 가입했다는 이유다. 이미 평가와 서훈이 이루어졌고, 또 국민 65%가 반대하는데, 권력은 왜 이 일을 강행하려고 할까?

  현 권력의 사고방식은 이렇다. ‘대한제국보다 일제가 행복했다는 식민주의 긍정론은 매국노 이완용도 어쩔 수 없었다는 친일 반역자의 옹호로 이어지고,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건국을 부정하고 ‘1948년 건국론을 주장하여 독립운동을 부정하면서, 박정희 전두환 군사 쿠데타를 찬양하는 반공 독재 미화로 귀결된다. 동상 철거는 하나의 표상이다.

  퇴행적 역사의식, 한 세기 전의 식민주의요, 반세기 전의 반공주의다. 시대착오니, 한국판 돈키호테요, 현대판 왕망이다. 권력자의 역사 개입치고는 허탈할 정도로 근거가 빈약하다. 동시에 허무하다. 이미 세계에서 유례없는 치열한 투쟁으로 독립과 민주화를 이룬 한국인이 어찌 이 같은 복고주의 절대권력을 용인하겠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