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시대 주인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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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시대 주인 되기
  • 한들신문
  • 승인 2023.11.13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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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신용균

예나 지금이나 주인 노릇은 쉽지 않다. 주인이 제 노릇을 하지 못하면 작게는 패가망신, 크게는 망국멸족에 이른다. 전국시대 연나라에 쾌()라는 왕이 있었다. 자지(子之)라는 신하가 말했다. 성왕이 되려면 신하에게 국정을 일임해야 한다고. 왕은 그 말을 믿고 자지를 재상으로 임명하고 전권을 맡겼다. 결과는 뻔했다.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백성은 도탄에 빠졌다. 이웃 제나라가 쳐들어왔다. 백성은 성문을 열었다. 결국, 연나라는 멸망했다. 역사에 이런 사례는 흔하다. 진나라의 이세 황제도 같은 꼴이었고, 19세기 세도정치 아래 조선의 왕도 그랬다. 이럴 때 민중의 대응은 간단했다. 취도산민.

  취도산민(聚盜散民)모이면 도적이고 흩어지면 백성이라는 뜻, 명종실록에 나온다. 당시 정부의 중과세로 농민이 도탄에 빠졌고, ‘의적임꺽정이 등장했다. 정부는 중앙군을 몇 차례 파견해 겨우 진압했지만, 실록에 취도산민이라 했으니, 정부의 수탈을 질책하는 말이었다. 전근대 백성의 선택은 도적이거나 백성, 저항이거나 순응이었다. 오늘날 민주의 시대에는 이와 다르니, 독재에는 저항이요, 민주에는 주인이다. 주인 노릇은 민주주의의 척도다.

  근래 세계의 공중파 방송은 심심찮게 한국을 다룬다. 주제도 문화에서 사회경제로 확대되었다. 그리스나 우크라이나가 한국 경제를 재조명한 일이나 프랑스가 한국의 시설을 본받자는 방송은 나름 이해할 수 있다. 반면, 복지의 선진국인 유럽이 한국을 지향 모델로 소개한 것은 뜻밖의 일이니, 덴마크에서 한국의 의료보험제도를 의료 복지의 본보기로 방송한 것이 일례다.

  한국이 인정받게 된 바탕에는 민주주의가 있다. 유럽인들은 아시아에서 일정 수준의 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라고 평가한다. 문화든, 경제든, 시설이든, 복지든, 그 바탕에는 한국 민주주의가 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민주주의는 민중이 권력의 주인이라는 뜻, 그러면 실제 우리는 얼마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을까, 두어 가지 척도가 있다.

  하나, 지언(知言).‘말을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맹자에 나온다. 대개 반민주 정권은 말로써 국민을 현혹한다. 예컨대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에는 민주도 정의도 없었고, ‘신자유주의는 가진 자만의 자유이며, ‘인천공항 민영화는 국가 재산 빼먹기가 본질이다. 지금 여당의 혁신위원회만 보아도 그렇다. 그 수장은 의사인 인요한, 그는 과거 한국의 의료보험제도는 사회주의라고 주장했던 인물인바, 복지 선진국 덴마크에서도 본받으려고 하는 한국의 의료보험제도를 사회주의로 비판했던 인물에게서 무슨 혁신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말의 속임수다.

  둘, 연대. 자유·평등·박애는 민주주의의 3대 이념이다. 처음 18세기 프랑스 혁명 때 내걸었고, 유럽을 거쳐, 지금은 세계적으로 통용된다. 자유와 평등은 민주주의의 양대 이념이다. 그러나 박애의 뜻은 명확하지 않다. 번역 때문이다. 애초 일본인이 번역한 단어를 한국에 그대로 수용해 쓰다 보니 발생한 문제다. 박애(Fraternité)의 정확한 뜻은 연대이다. ,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 정당, 단체, 시민이 서로 연대한다는 뜻이다. 현재 이 정신이 잘 드러나는 것이 유럽의 노동자 파업, 파업은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흔쾌히 수긍한다. 그것이 연대 의식이다. 약자는 항상 다수며, 연대는 다수의 힘이다.

  셋, 균형과 교체. 권력의 생리는 과대하면 방자해지고 오래되면 부패한다. 최선은 한쪽에 몰아주지 않는 것, 그리고 자주 교체하는 것이다. 민주국가의 유권자는 여당과 야당을 엇비슷하게 만든다. 그리고 여야를 자주 교체한다. 미국이 그렇다. 민주당과 공화당, 상원 하원 모두. 게다가 대통령을 양당에서 번갈아 세운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도 그랬다. 그럴 때만 권력은 주인을 겁낸다. 제대로 된 주인 되기다.

  최근 한국인의 주인 되기는 크게 진전되었다. 권력에 공정성을 요구하기에 이른 것, 금수저가 부당한 이익을 취하거나, 선거 때 끼어들어 당선되면 이권이나 한 자리를 노리는 따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벌써 전국 곳곳에서 공정성을 기준으로 권력과 인물의 교체가 일어나고 있다. 거창은 1990, 3당 합당 이후 한 정당이 권력을 독점해 왔으니, 이미 긴 세월이다. 균형과 교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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