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과 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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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과 편향
  • 한들신문
  • 승인 2023.05.0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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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신용균

패자란 힘으로 제압하는 자를 말한다. 중국 최초의 패자는 제환공이니, ‘춘추 5패’가 연이어 나왔고, 서양 최초의 패자는 로마제국이니, ‘팍스 로마’(Pax Roma)라고 한다. 현재 세계는 초강대국 미국의 패권에 중국과 러시아가 도전하는 양상이다. 다시 세계 패권 경쟁기다. 전환기 한국의 외교는 균형과 편향, 명분과 현실의 갈림길에 서 있다.

  요즘 다시 주목받는 책이 있다. 1987년 영국의 역사학자 폴 케네디가 쓴 “강대국의 흥망”이다. 그는 역사적으로 5대 강국을 분석하여 군사비가 경제력을 초과하면 쇠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를 기초로 미국은 쇠퇴하리라고 전망했다. 이 책은 출판 직후 미국과 전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나 곧 담론에서 사라졌다. 미국이 세계 패권 국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세계는 미소 경쟁에서 승리한 미국의 힘을 인정했다. 이때 일본계 미국인 학자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을 써서, 미국의 승리로 역사는 종말을 고했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패권은 영원할 것 같았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요즘 케네디의 책이 다시 부상하고, 후쿠야마는 자신의 오류를 인정했다. 겨우 30년 만이다.

  장차 세계에서 부상할 나라를 브릭스(BRICs)라고 한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약자다. 러시아가 먼저 미국의 패권에 도전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팽창을 근간으로 삼은 나라였다. 또, 세계 제2의 군사력, 미국보다 많은 핵무기를 가졌다. 미국이 참전하지 못하는 이유다. 미국의 힘이 무시당하자 미국 패권의 세계질서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중국의 도전은 더 위협적이다.

  세계 제2의 경제 대국, 제3의 군사 대국이 된 중국의 팽창은 노골적이다. 경제적 ‘일대일로’,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 대만 침공 공표 등. 그 바탕에는 중화사상이 있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고 나머지는 오랑캐라는 화이론(華夷論)이 있는 한 중국의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가상 적국으로 간주했다. 

  최근 한국 정부는 친미 친일, 반중 반러의 외교 노선을 분명히 했다. 편향 외교요, 냉전의 부활이다. 대통령은 일본과 미국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의 더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실제 양국은 동해, 서해에서 군사작전을 벌였다. 세계 2위, 3위의 군사 대국, 핵무기 보유국, 한반도와 접경국, 북한의 러·중 접근, 여기에 무역 비중까지 고려하면, 한국은 위험에 빠진 형국이다. 동북아에서 미국의 심상 지도는 이렇다. 

  심상 지도란 ‘마음속 지도’라는 뜻, 지도에 국가전략을 표시한 것이다. 주일 미군 사령관의 말은 솔직했다. “러시아=중국, 우크라이나=대만, 폴란드=일본, 루마니아=필리핀” 미국은 일본, 필리핀에 군사기지를 두고, 대만에서 중국과 싸운다는 전략이다. 한국은 쏙 빠졌다. 지도로 그려보면, 한국은 전초기지다. 마치 한국은 스스로 전쟁의 포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 모양새다. 왜 그랬을까, 조선 시대 왜란과 호란이 생각난다.

  왜란 때, 조선 정부는 일본의 침략을 알고 있었다. 동인과 서인의 사신이 파악한 내용은 정반대, 동인은 침략이 없다고 했고 서인은 반드시 침략한다고 했다. 당시 동인의 영수는 류성룡, 집권당이었다. 그는 정국 불안을 이유로 사실을 숨기고 전쟁에 대비하지 않았다. 대 참패의 원인이었다. 만약 이번 편향외교가 국내 어떤 정파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결과라면, 참으로 위험하다.

  호란 때는 명청 교체기, 집권당 서인은 중화사상에 빠져있었다. 명은 한족이니 중화, 청은 만주족이니 오랑캐, 그러므로 ‘비록 나라가 망하더라도 중화를 존중해야 한다’라는 사고방식에 빠져 청나라를 적대시하다가 침략을 받았고, 결국 항복했다. 그것이 중화든, 자유든, 관념에 빠져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욱 위험하다.

  명분은 옳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해야 하고, 중국은 대만을 무력으로 점령하면 안 된다. 그러나 현실은 위험하다. 명분은 현실이 뒷받침될 때 위력이 있다. 세계 6위권의 군사력과 세계 10권의 경제력, 그리고 세계적 소프트파워를 갖춘 한국이라면, 명분과 현실 속에서 균형만 잡아도 미·일과 중·소 모두의 구애를 받을 것이다. 이제라도 편향을 버리고 균형을 찾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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