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과 남북통일
상태바
시대정신과 남북통일
  • 한들신문
  • 승인 2023.02.13 11: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학자 신용균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있다. 근대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창시한 개념이다. 그는 한 시대를 관통하는 절대적인 정신이 있다고 보고, 그것을 시대정신(Zeitgeist)이라고 불렀다. 시대정신은 마치 거대한 강물과 같아서 거스를 수 없다. 헤겔은 말을 타고 진군하는 나폴레옹에게서 시대정신을 발견했다. 근대 유럽의 시대정신은 시민혁명이었다. 당대 수많은 반혁명이 있었지만, 결국 역사는 그쪽으로 귀결되었다. 시대정신이란 그런 것이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시대정신을 아는 방법은 거시적으로 역사의 흐름을 보는 것이다. 일찍이 역사학자 강만길 선생님은, 역사가는 두 개의 눈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나의 눈은 산 위에 두고 다른 하나의 눈은 강물 속에 두라는 것이었다. 그래야 현실 속에서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시선으로 발견한 개념이 ‘분단시대’였다. 한국 현대사를 규정하는 일차적 요소가 분단이며, 통일 후에야 분단시대가 끝난다는 인식이다. 바꾸어 말하면, 현대 한국사의 시대정신은 민족통일이라는 뜻이다. 

  한국 현대사 80년을 돌아보면, 그 귀결은 평화통일론이었다. 평화통일은 합의통일이다. 남북이 서로 합의해서 통일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합의 통일로 귀착된 것은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즉, 무력통일과 흡수통일은 한국의 역사적 조건 속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역사상 대부분의 통일은 무력통일이었다. 그러나 한반도의 통일은 전쟁으로 이룰 수 없다. 이미 6·25 전쟁에서 확인되었다. 전쟁 초기 3개월 동안 북한이 압도적으로 남한을 점령할 듯이 보였다. 그러나 실패했다. 미국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그 후 UN군이 북한 전역을 점령할 듯이 보였다. 역시 실패했다. 중국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38선과 비슷한 휴전선으로 끝났다. 왜인가?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 때문이었다.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결코 어느 세력도 양보할 수 없는 요충지였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는 한반도의 전쟁에는 필연적으로 외세, 그것도 세계 최강대국의 개입을 초래하게 된다. 이것은 한반도가 분단되었던 배경이자, 6·25 전쟁이 국제전이 되었던 원인이었다. 지금도 그 조건은 변함이 없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외세가 필연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에 한반도는 무력으로 통일될 수 없다.

  반면, 흡수통일론은 독일 통일 후 급속히 부상했다. 한국도 서독이 동독이 흡수한 것처럼 통일하자는 것이다. 전제는 북한의 붕괴였다. 실제, 남북한도 1970년대 이후 이 방식에 집중하였다. 이른바 체제 경쟁이다. 냉전이 끝나 데탕트 시대가 열리고, 미국과 중국이 수교하자, 현실적으로 남북의 전쟁과 무력통일은 불가능했다. 그러자 남북한은 전쟁을 포기하고 상대를 인정한 채, 상대체제를 붕괴시키는 데 주력했다. 7·4 남북공동선언, 남한의 유신체제와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 체제가 이 시기를 대표했다. 그러나 이 또한 실패했다. 

  남북한 어느 쪽도 붕괴하지 않았다. 심지어 1990년대 심각한 위기 처했던 북한도 붕괴하지 않았고, 지금도 북한이 붕괴하리라고 전망하는 학자를 찾기 힘들다. 분단국가가 왜 이렇게 안정적일까? 손호철 교수의 연구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1970년대 남북한의 관계를 연구한 결과, 적대적 의존관계라고 규명하였다. 남북은 서로 적대시하면서 상대에 기대어 각자의 권력을 강화하는 의존관계라는 것이다. 남북은 상대편의 부강을 자신의 존립기반으로 삼기 때문에, 서로의 격차가 커질수록 체제가 붕괴하기는커녕 오히려 권력의 집중과 강화를 초래했다. 적대적 의존이라는 특이성이 남북 관계의 본질이다. 그러니 흡수통일은 실현될 수 없다.

  평화통일론은, 한반도에서 무력통일, 흡수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후에야 대세가 되었다.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일련의 남북합의가 그것이다. 이론상의 결론이 아니라 역사적 귀결이었다. 현대 한국의 시대정신은 남북통일이며 평화통일론은 그 방안이다. 시대정신은 역사적 필연이며,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지금 남북한은 거꾸로 가고 있다. 북한은 남한은 적국으로 규정하고 핵무기로 공격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맞서 남한에서 핵무장론이 대두하고 있다.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역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