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글을 쓰며 산다는 것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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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글을 쓰며 산다는 것2
  • 한들신문
  • 승인 2023.11.1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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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소설가)
▲삽화 :‘페르 라페즈 공원묘지’   박혜리(한국미술가협회 회원)
▲삽화 :‘페르 라페즈 공원묘지’ 박혜리(한국미술가협회 회원)

파리의 동쪽 외곽에는 페르 라세즈(Père Lachaise)공원묘지가 있다. 오래 전 파리 여행에서, 몽마르트 언덕을 내려오다 우연히 맞닥뜨린 이 묘지의 발견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양치기 소년의 순수한 사랑을 그린 소설 을 쓴 알퐁스 도데와 소설가 발자크, 프루스트, 유미주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 극작가 몰리에르, 그리고 화가 모딜리아니, 드가, 들라크루와, 작곡가 쇼팽, 비제,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 도어즈의 짐 모리슨... 이름을 다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예술가, 지식인들이 이곳에 묻혀 있다.

  ‘페르 라세즈 공원묘지장례 예술'이라고 묘사될 만큼 고딕, 아르 누보(art nouveau: 19C ~ 20C 초에 걸쳐 프랑스에서 유행한 예술의 새로운 양식으로, 식물 모티브에 의한 곡선의 장식 가치를 강조), 아르 데코(art déco:1910~1930년대에 서유럽에서 번창한 장식 양식으로, 실용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이 특징) 등 다양한 예술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무덤 위에는 꽃과 선물, 키스 자국들이 가득하다. 여기 묻힌 예술가 중에는, 생전에 예술적 도발 행위로 감옥에 가거나 시대적 몰이해로 지독한 가난을 경험하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기도 했다. 이들은 죽은 후에야 뒤늦은 사랑을 받는 셈이다.

  그러나 현재의 프랑스는 예술가들이 살아서도 끼니 걱정 없이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나라로 꼽히고 있다. 다른 서유럽 국가에도 예술가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있지만 프랑스만큼 폭넓고 탄탄하게 자리 잡은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앵테르미탕 Intermittent'은 프랑스의 예술인 사회보장제도로, 문학·음악·시각 분야와 공연·영화·방송 분야로, 장르 구분이 된다. ‘앵테르미탕불규칙적’ ‘비정규적혹은 휴지기라는 뜻으로, 1958년 드골 정부하에서 문화예술인의 생계 안정을 위한 정책으로 시행되기 시작한 제도이다. 1969년에는 일거리가 불규칙하게 들어오는 예술가들에게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 주기 위해 보다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프랑스에서도 예술의 사회적 가치가 하루아침에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프랑스 예술가 노조의 역사는 세계 최초로 노동자 정부를 구성했던 1871파리코뮌(Paris Commune)’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예술가 노조는 이후 직능, 분야별로 세분되어 발전했으며, 1895년에는 프랑스 노동총연맹(CGT)산하의 공연예술 산별 노조 ‘CGT 스펙터클이 처음 만들어졌다. ‘CGT 스펙타클100년 넘게 예술가의 권익을 주장해 온 노조로, 지금도 11개 예술 분야의 단체협약을 손질하고 노조원들의 일자리와 사회보장, 직업교육을 챙기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앵테르미탕의 폐지를 주장하는, 프랑스판 전경련에 해당하는 경영인 단체 ‘MEDEF’에 맞서 이 제도를 지키기 위한 여론 형성에도 힘쓰고 있다. ‘문화는 모든 계층과 연령의 사람에게 고르게 나눠지는 거의 유일한 것이라면서, 프랑스가 누리는 문화강국의 이미지 뒤에는 수많은 예술가의 노동이 깔려 있음을 끊임없이 교육·홍보하고 있다.

  ‘앵테르미탕외에도 프랑스의 예술인 복지 정책은, 역사가 깊고 성공적인 것이 많다. 한 예로 시각예술 분야 종사자들을 위한 예술가의 집은 예술가들에게 살 집을 주고 생활비를 줄여준다. ‘예술가의 집2차 대전 직후 공제조합으로 출발해 1965년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예술가 사회복지 전담 조직으로 인정받았다. 매달 30유로 이하의 회비를 받고 의료, 출산, 육아 등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득의 18%를 일정 기간 납부하면 연금도 받을 수 있다. 회원은 프랑스의 모든 미술관·박물관에 무료입장할 수 있고, 미술도구를 살 때 할인 혜택도 받는다. 저작권이나 세금 관련 법률 상담도 받을 수 있다. 집과 작업실을 오가는 교통비조차 정부에서 할인해 준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제도가 있다면 시인 최영미가 도발한 호텔 객실의 논란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페르 라세즈공원묘지 주변은 집값이 저렴해 지금도 가난한 예술가와 노동자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여전히 예술가의 사정은 선배 예술가들보다 크게 더 나아지지는 않았겠지만, 그러나 생계가 걱정돼 예술을 포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예술가들에게 돌아가는 이런 혜택은 예술의 공공적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에서 비롯된다. 프랑스의 예술가는, 자신의 작업은 공공서비스이고 일정 부분 사회에 대한 봉사라고 생각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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