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입장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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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입장 차이
  • 한들신문
  • 승인 2023.12.0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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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인 백상하

요즘처럼 유튜브가 활성화되어 자신의 입맛에 맞는 방송만 골라 보고 듣는 세상은 아마도 처음이 아닌가 싶다. 예전처럼 텔레비전에 의지해 정보를 얻었을 때 위정자는 그 정보만 차단해도 일정 부분 자신의 의지대로 국민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접함으로써 오히려 극단을 달리는 경우가 더 많아지면서 부작용이 많아진 것 또한 사실이다. 주변 사람들과 대화할 때 자신의 입장만을 이야기하려고 하지 타인의 입장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많아졌음은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개인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국가도 극단으로 치닫는 것 같아 아주 안타깝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도 양측이 오랜 갈등을 대화로 해결하려 하지도 않았고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전쟁을 시작했으며 이스라엘과 하마스 역시 그 갈등을 대화로 해결하지 못한 채 많은 민간인 피해자를 양산해 내는 전쟁으로 비화하고 말았다. 국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반인 역시 이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속한 사과 작목반은 일종의 계약 재배를 하는 곳이다. 사과를 수확한 후 대부분을 한 곳의 납품처로 보낸다. 소비자에게 판매할 때 생산자의 이름이 표기되고 반품이 이루어졌을 때 생산자에게 이러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어 생산자가 자신의 생산물 품위를 잘 확인할 수 있다.

  여느 해 같았으면 이런 상황이 서로에게 별 무리가 없었겠지만, 올해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봄에는 냉해로 착과수가 많이 줄어들었고 냉해를 버틴 사과들은 기형이 많아 예년에 비해 수확량이 많이 감소했다. 거기다 여름에 내린 집중 호우로 각종 병충해 및 엽소 현상이 발생했고 이파리가 떨어진 사과나무는 사과를 키우지도, 예쁜 색을 만들지도 못했다. 같은 농부의 입장에서 백번 이해가 되지만 농산물을 공산물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극히 일부의 소비자는 불만을 가질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일부 직거래 도중 빨간색을 가지지 못한 사과는 소비자의 외면을 받아 반품이 많이 되었고 생산자 중 반품이 많았던 생산자는 실망과 함께 올해처럼 힘든 상황을 견뎌내고 나온 사과를 외면하는 소비자가 아주 야속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11월에 안동 공판장에서 거래된 사과 중 흠과 비율을 보니 75퍼센트에 달했다. 작년의 경우 같은 안동 공판장에서의 흠과 비율이 60퍼센트가 되지 않았지만, 올해는 더 많은 흠과가 다 생산되어 거래된 것이다. 해가 갈수록 좋은 농산물을 만나는 것이 더 힘들어질 것이고 이는 노지 생산물이든 시설 생산물이든 다 마찬가지다.

  거창 지역의 경우 중생종 사과의 탄저병부터 시작해서 겹무늬썩음병까지 다습으로 인한 병으로 사과가 큰 피해를 보았고 엽소, 갈반병까지 발생해 내년 사과 농사까지 영향을 받을 예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예전에 좋은 기후에서 생산되던 예쁘고 맛있는 사과만을 고집한다는 것은 농민들에게는 더 가혹한 일이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많은 사람은 아직 기후 변화와 관련된 농산물 생산 품위 저하는 먼 나라 얘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아주 아쉽다. 마치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르면 뚝딱하고 모든 것들이 만들어지듯이 농민들이 좀 더 노력하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소비자들의 입장도 모르는 바 아니다. 이왕이면 같은 돈 내고 더 좋은 걸 먹고 싶지 질이 떨어지는 걸 누가 먹고 싶으랴. 하지만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고 했다.

  변화하는 기후와 그에 따른 농민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해 준다면 우리 농민들은 비록 힘이 빠지긴 하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더욱더 적극적으로 내년 농사를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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