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양민학살 억울한 죽음 뒤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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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양민학살 억울한 죽음 뒤처리
  • 한들신문
  • 승인 2021.05.03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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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운섭 전 거창사건유족회장

이 기고는 고 김운섭 전 거창사건유족회장이 거창사건 당시 겪은 경험을 책으로 만든 ‘거창양민학살 억울한 죽음 뒤처리’입니다. 한들신문은 당시 김 전 회장이 겪은 생생한 경험담을 기고로 옮기면서, 생동감을 전하기 위해 책에 사용된 표현까지 그대로 인용함을 알려드립니다.

 

차 례

손해배상청구소송

반세기

회장의 사표

50주기 13회 합동위령제 및 추모식

거창사건 학술발표회

선진지 견학

정기총회연기

회갑연

신축

실망

태풍 그리고 국회 활동

4회 학술발표회(서울대2)

 

회장의 사표

문철주 회장이 2001625일 총무인 나에게 사표를 던졌다.

유족회 회장은 봉사하는 자리인데, 문 회장은 경찰 공무원을 하다가 퇴직하고 유족들이 추대하여 회장직을 맡았는데, ·임 두 고문의 괴롭힘에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렸다. 유족회가 한심해졌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가 없다.

나는 이갑수, 조성제, 김길영을 만나 회장 임기가 6-7개월 남았는데, 임기나 채우게 하자고 제의하여 의견 일치가 되어 산청으로 문 회장을 만나려고 달려갔다.

식당으로 나오게 하여 점심을 먹으면서 중도에 그만두는 것은 대내외적으로 망신스러운 일이다. 두 사람이 괴롭힌다 하여 전체 유족회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얼마 남지 않은 임기나 채워달라고 설득하였다. 막무가내(莫無可奈)로 고집을 부리면 어쩌나 했는데 어렵지 않게 사표가 반려(返戾) 되었다.

비 온 땅이 굳어진다 했듯이, 문 회장과 나는 심기일전(心機一轉)하여, 특별법 개정 및 합동 위령사업에 주력하기로 했다.

 

50주기 13회 합동위령제 및 추모식

2001915일 박산 합동묘역 뒤편 예비군훈련장에서 엄수되었다. 금년에는 특별히 이근식 행정자치부장관이 참석했고 이강두 의원, 권경식 경남행정부지사가 왔다.

김혁규 경남지사도 참석 예정이었는데 서울 출장 중 항공기 조종사들의 파업으로 비행기가 결항되어 참석하지 못했다. 관내에서는 정주환 군수, 전현옥 군의회의장, 이정수 교육장 등 800여 추모객이 모였다.

이런 행사를 주최하는 측은 사람이 많이 모이고 고위층이 많이 와야 힘이 나는데, 금년에는 장관이 왔으나 욕심을 부리자면 총리나 대통령이 와서 제주 4.3과 같이 사과를 해주면 하는 아쉬움이다.

 

거창사건학술발표회

서울대 법대가 주관하여 5회에 걸쳐 학술발표를 하기로 하고 첫 번째를 20011115일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서울시청 뒤)에서 했다. 주제발표: 박명림 연세대교수 거창 양민학살과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조명”, 한인섭 서울법대 교수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의 방향”, 지정토론자: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김운택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 김영택 한국 역사기록 연구소장, 전 동아일보 기자, 방청석에는 이강두 의원, 정주환 군수 유족 등 관심 있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이런 행사를 하기 위해서 주최 측에서는 신경이 많이 쓰인다.

방청석을 채우기 위해 유족을 동원 관광버스에 태워 장거리 서울까지 왔는데 시청 앞에는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교통순경에게 사정을 하여 한편에 시간을 정해 조건부로 주차를 해놨다. 걸음이 더딘 촌 노인들을 모시고 서울 시청 뒤 행사장을 왕복하는 데는 이미 시간이 초과되어 사과를 해야 했다.

행사를 마치고 제자리에 무사히 와서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에 긴장이 풀린다.

 

선진지 견학

합동 위령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선진지 견학이 필요했다. 서울 우이동 4.19 묘지, 광주 망월동 5.18 묘지를 견학했다. 2002118일 겨울 냉기를 품은 바람은 봄의 문전에서도 차가운데, 군청자치행정과 신광범 과장, 전정규 담당, 이정현 현장 소장, 문철주 유족회장과 부산 UN묘지와 마산에 건설 중인 3.15 성역화 사업지를 둘러보았다.

419315는 학생들의 의거였다. UN묘지는 참전용사들의 묘지였고, 잘 단장해 놓았다. 거창사건 추모공원 설계는 문제가 많다. 한식 담장이 빠졌고, 위령탑은 옹벽을 처서 화강석을 붙이게 되어 있으며, 안내판은 스텐으로 간단하다. 그리고 연육교는 사람만 다니게 설계가 되어있다. 묘비석은 화강석이었다.

설계변경을 요구했다. 묘역 뒤편에는 한식 담장을 해야 하고, 위령탑은 통돌로 해야 하며, 안내판은 한식으로 하고, 연육교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어야 되며, 사업이 끝나면 경내에 자동차로가 없는데 작업차량이 드나들 수 있게 길을 내야 하고, 묘비석은 오석이라야 한다.

김숙희 부 군수에게 설계변경을 요청하여 확답을 받았으나, 추가 비용이 드는 한식 담장은 난색을 하여, 서울 거창사건 처리 지원단 김구현 단장에게 요청을 하였다. 한번 해 놓으면 다시 하기 어려우니 초창기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니까 긍정적 반응이다. 이렇게 지혜를 짜서 성사가 되면 저절로 된 줄 알고 칭찬은 인색하고 잘못된 것, 지적은 후하다.

한창 위령사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 산청군 차황면에 산다는 박선순, 박순조, 박남이 여 3형제가 찾아와 민사소송 인지대가 일백칠십 만 원이나 되는데, 셋이서 탈탈 털어도 모자라 빚을 내어 왔다는 것이다.

소송에서 지면 되돌려 받지 못한다 하여도 어쩔 수 없다며 인지대를 내고, 같이 점심이나 하자 하여 사양을 하였더니 만 원을 주면서 점심 사 먹으란다. 아무리 사양을 하여도 던져놓고 가기에 여직원에게 보관시켜 임원 회의 때 비용으로 보태라 하였다.

유족회 일을 하면서 저런 분들을 위해 미력이나마 잘해보리라 다짐을 해 본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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