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양민학살 억울한 죽음 뒤처리
상태바
거창양민학살 억울한 죽음 뒤처리
  • 한들신문
  • 승인 2021.05.31 15: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 김운섭 전 거창사건유족회장

이 기고는 고 김운섭 전 거창사건유족회장이 거창사건 당시 겪은 경험을 책으로 만든 ‘거창양민학살 억울한 죽음 뒤처리’입니다. 한들신문은 당시 김 전 회장이 겪은 생생한 경험담을 기고로 옮기면서, 생동감을 전하기 위해 책에 사용된 표현까지 그대로 인용함을 알려드립니다.

▶ 차 례 ◀
회장의 사표
제50주기 13회 합동위령제 및 추모식
거창사건 학술발표회
선진지 견학
정기총회연기
회갑연
신축
실망
태풍 그리고 국회 활동
제4회 학술발표회(서울대2회)
제51주기 합동위령제 및 추모식
세 건의 개정 법률안

 

이근식 행정자치부 장관과
이근식 행정자치부 장관과

정기총회 연기
 문철주 회장이 산청에 살기 때문에 무보수라서 사무실에 주 1회 출근도 어려웠다. 그러나 양심적으로 노력은 많이 한다. 그런 회장을 몇 사람이 무능으로 휘둘러 사표까지 냈었는데 임기가 끝나는 2002년도 정기총회를 1월 26일 개최한다고 안내장까지 발송했는데 갑자기 폭설이 쏟아져, 길이 미끄러워 자동차가 다닐 수 없으므로 무기 연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오지에는 자연재해에 속수무책이다.
 지금도 오지에는 행정에 손길이 그만큼 더디다.
 2002년도 유족회 정기총회는 2월 14일 날 신원복지회관에서 개최하고, 회장선출은 전형위원을 뽑아 추천을 하였는데 이철수와 임호섭이 차기 회장으로 박성출을 추천했다. 유족회에도 잘 나오지 않는 박성출은 조성제와 군의원에 출마했을 때 유족끼리 싸우지 말고 조성제에게 양보하고 유족회 회장을 제의하였으나 듣지 않고 낙선을 했다. 그리고 2년 전 문철주와 유족회 회장 경선을 하여 떨어진 다음 유족회에 나타나지 않다가 총회 때면 얼굴을 내민다.
 그런 사람을 이철수와 임호섭이 사전 내락을 하여 추천을 하였으나, 다른 전형위원들은 나를 회장으로 뽑았다. 사실 나는 회장을 할 생각이 없었다.
 유능한 회장이 선출되면 총무를 더하다가 생각해보기로 했는데 차질이 생겼다. 그러나 회장에 선출되었으니 임원 구성을 해야 했다. 부회장에 신현정 박성출, 총무 김길영, 재무 신문균, 임원 구성을 마치고 며칠 후 이사 회의를 개최하였는데, 부회장 박성출이 참석하지 않아 총무를 보내 나오라고 설득을 하였으나 듣지 않아 빼야 했다. 내 생각은 유족회 부회장을 하면서 유족회 사정을 충분히 파악한 다음에 회장을 하라는 뜻이었는데 내 생각과는 달랐다.
 2002년도 유족회는 중차대한 시기였다. 특별법에 따라 합동위령사업을 해야 하고, 특별법개정, 공청회, 민사소송항소, 합동위령제 및 추모 행사, 이런 사업들을 해야 한다. 2월 18일 거창군 부군수와 의회 의장을 찾아가 상견례를 하고 협조 요청을 하였다. 
 3월 7일에 산청에 문철주 고문, 신원에 김길영 총무, 신문균 재무, 부산 문홍두, 서상도, 서울 문홍환, 문충현, 이철수, 이용구와 거창사건 등 처리지원단을 방문 하여 김명진 단장에게 합동위령사업과, 특별법개정, 한식 담장 예산 확보 협조를 부탁하고, 이날 14시에 김 단장의 안내로 이근식 행정자치부 장관을 예방했다. 목적은 합동위령사업비 반영과 특별법개정에 협조 요청을 하기 위함이었는데 의외로 긍정적이어서 같이 기념촬영도 하였다. 오후 3시에는 이강두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면담하고 4월임 시회에서는 특별법개정 국회 통과 80% 장담한다는 이의원의 자신감에 박수를 보내고, 16시에는 한인섭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부학장을 예방하고 공청회개최 문제를 논의한 결과 서울대학교에서 주관하여 하겠다는 합의를 하고, 서울·부산 유족들은 집으로 가고 신원 유족들은 막차까지 놓쳐 신촌에 있는 허름한 여관에서 하룻밤 자고 익일 날 귀향했다. 회장이 되자마자 바쁜 행보였다.

 

회갑연
 2002년 3월 22일(음 2월 9일) 고로(孤老)의 회갑연이 되었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정해진 교육을 받고 군필을 하고 전공 분야로 돌아가 돈을 벌어야 결혼을 하여 아들딸을 낳아 잘 기를 수 있다. 그러므로 생일이나 회갑 같은 날에 효도를 받는 것을 자식 기른 보람 삶의 보람으로 여기는데, 팔자가 기박하여 60년 세월이 너무 쓸쓸하다. 한때는 아들 둘에 손자 재롱 보며 부러울 게 없었는데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더니 말년에 혼자 낙향하여 외로운 신세가 되었다. 아직 겨울 한기가 가시지 않은 동창이 밝아온다. 온몸을 감싸준 이불 속을 빠져나와, 밥을 하려니 반찬이 없다. 라면 하나를 끓여서 김치를 곁들이니 눈물 콧물이 떨어져 간을 맞추니 진수성찬이다. 집은 옛집이라 낡을 대로 낡아 구멍 난 벽 사이로 쥐들이 드나들고, 여름이면 뱀도 들어올 것 같다. 

 

신축
 집이 너무 낡아 볼펜으로 집 설계를 하여, 2002년 4월 1일 굴삭기를 세내어 집을 헐어내고 신축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고급주택을 지어본 경험으로 아담한 집을 지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촌에 별안간 신축 붐이 일어났다. 일거리가 없어 빌빌대던 목수 미장 벽돌공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기초를 해놓고 벽돌공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거창읍에서 출퇴근을 해야 하므로 인건비가 비싸다. 안방 하나, 거실, 욕실, 보일러실, 16, 7평을 짓는 데 두 달이 걸렸다. 그동안 종실 식당 방에서 두 달 동안 보내고 6월 10일 새집으로 입주를 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