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의 소프트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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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의 소프트파워
  • 한들신문
  • 승인 2022.01.28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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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주목받는 김구 선생의 말이 있다. ‘문화의 힘’이다. 나의 소원이라는 글에 나온다.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노 혁명가 김구 주석, 그의 유일한 소원은 한국의 독립이었는데, 그 나라가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지기를 바랐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소프트파워’다. 소프트파워는 30여 년 전 조지프 나이 교수가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군사력이나 경제력과 같은 하드파워에 대응한다. 하드파워가 군사적 강제력이라면, 소프트파워는 문화적 친화력이다. 소프트파워에는 자발적인 순응을 유도하는 힘이 있다. 최근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으니, 김구 선생의 소원이 이루어진 듯하다. 

  소프트파워의 특징은 평화롭고 자연스러운 데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젖어드는 것이다. 세계적인 저널리스트와 석학들이 한국에 주목하는 이유다. 한국의 군사력 6위, 경제력 10위, 국력 8위가 절대 낮은 것은 아니로되, 그들은 한결같이 한국 문화가 세계에 전파되는 현상에 주목하는 것은, 그 힘이 곧 외교력, 경제력의 증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비록 소프트파워라는 말을 쓰지 않았지만,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들도 그 영향력에 주목한 지 오래다. 인근만 해도 그렇다. 합천은 “水려한 합천”을 내세운다. 물이 좋은 고장이란 뜻이겠다. 하긴 합천 댐도 있고 가야산 홍류동 계곡, “소리길”도 있으니 그런대로 수긍이 된다. 산청은 “산엔 청”을 내건다. 산이 맑다는 뜻이니, 지리산을 끼고 있는 산청으로서는 적당하다 싶다. 함양은 “힐링과 건강의 중심지, 함양”을 내걸었다. 합천과 산청보다 더 적극적이다.

  그러나 놓친 것이 있다. 소프트파워가 문화의 힘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의 구호 속에는 자연과 건강, 즉 관광산업에 치중했을 뿐, 정작 소프트파워의 핵심이 되는 문화는 뒷전이었다. 그러니 영향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것은 함양에서 “선비의 고장”이라는 구호가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함양에는 통일신라 때 최치원이 있었고, 조선 시대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온 후 정여창과 같은 인물을 낳았으니, “좌 안동, 우 함양”이라는 소프트파워의 소재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반면, 거창의 구호는 좀 독특하다. 거창은 “거창韓 거창”을 내세운다. 해석해 보자면, 한국에서 거창이 가장 거창하다는 뜻이 되겠다. 나름대로 재치가 있다. 또, 이를 응용해 거창의 사과가 거창하고 거창의 딸기가 거창하다고 선전하기도 편하다. 그러나 뭔가 허전하다. 목표를 놓친 느낌이다. 진정 거창할 것이 거창하지 않으면 “거창한 거창”은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최근 몇 년을 되돌아본다. 한때 거창의 자랑이었던 거창국제연극제가 돈 문제로 파탄 났고, 거창교도소 공사가 한창이다. 연극은 소프트파워이고 교도소는 하드파워다. 소프트파워가 정치적 힘과 경제적 부를 가져오는 것이 현대의 추세다. 간단히 실험해 보자. “거창에는 국제연극제가 거창합니다!”라고 외쳐보자. 또 “거창에는 교도소가 거창합니다!”라고 외쳐보자. 결과는 너무 자명하니, 설명할 필요도 없다.

  거창의 미래는 소프트파워, 즉 문화의 힘을 높이는 데 달려있다. 그러면 지역의 명성과 경제적 부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21세기는 그러한 시대다. 이미 세상은 그렇게 바뀌었다. 한국이 세계에서 소프트파워로 쇠귀를 잡았듯이, 거창 또한 그렇게 하면 된다. 거창은 이미 빼어난 산수에 뛰어난 인재가 있고, 또 국제연극제뿐만 아니라 교육 도시의 명성도 있다. 그것이 곧 나이 교수가 말한 소프트파워며, 김구 선생이 말한 문화의 힘이다. 

  새해다. 새해에는 새 꿈을 꾼다. 너무 늦었다고 한탄할 필요는 없다. 맹자가, 천시는 불여지리요, 지리는 불여인화(天時不如地利地利不如人和)라고 했듯이, 아무리 좋을 때를 만나더라도 지리가 이로운 것만 같지 못하며, 아무리 지리가 이롭다고 하더라도 인화만 같지 못한 법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며, 조화며, 문화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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