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자기만의 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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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자기만의 방 1
  • 한들신문
  • 승인 2022.02.25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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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소설가)

한때 나는 나의 방이 없었다. 나의 방(우리의 방)은 가차압 처분되어 사라지고, 임시로 친정집 방이 내가 머무는 공간으로 주어졌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만의 방이 있었던가를 생각해 본다. 물론 나의 방이라 명명하던 공간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조차 엄밀하게 따지자면 아버지의 방을 결혼하는 시간까지 임대했을 뿐이었다. 

여자는 삼계(三界)에 집이 없어
아버지의 집도 
남편의 집도
아들의 집도
여자의 집은 아니어서// (중략)
여자는

자신의 집을 짓기 위하여
자신을 통째로 찢어발기지 않으면 안되는가,
검정나비처럼 흰나비처럼 
여자는 왜
자신의 집을 짓기 위하여선
항상 비명횡사를 생각해야 하는가1)

  김승희 시인의 시구처럼 여자인 나는, 나의 집을 가진 적이 없었던 것이다. 결혼 후 부부가 한 방을 써도 사고방식과 삶의 방향, 그리고 취미가 다르면, 각기 다른 반쪽의 방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다.

  나만의 방을 생각하면 [자기만의 방]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를 생각하게 된다. 벌써 18세기 말에 울프는, 여성도 자기의 생각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고 자기 생각을 글로 쓸 수 있는 공간,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던지, 울프는 자기가 설 땅을 잃고 마침내 오즈강에 몸을 던져 비명횡사하고 만다.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러시아까지 도망갔다가,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연인은 총살되고 자신은 옥살이를 했던 일본의 여배우 오카다 요시코가 있다. 그녀가 일본으로 돌아온 건 1973년으로, 당시 도쿄 도지사였던 미노베 료키티가 그녀를 귀국시켰다. 그러나 그녀는 온갖 영광과 안락을 뒤로하고 곧 모스크바의 낡은 아파트로 돌아간다. 그녀는 귀엽고 예쁜 여배우를 뛰어넘어 자기의 주장과 개성을 지닌 지성적인 여배우로 다시 태어나, 한 많은 땅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생을 마감한다. 오카다 요시코는 일본 땅에 갇혀 갖가지 순종을 바쳐야 하는 여성의 삶의 틀 속을 뛰쳐나와, 스스로 선택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온 마음과 몸을 불살랐다. 
  우리나라에는 그보다 훨씬 전에, 울프만큼 논리적으로 설명하거나 오카다 요시코처럼 당당하게 고국을 버리고 자신의 자리를 선택한 바는 없지만 자기만의 방을 가지기 위해 몸부림친 여자들이 있었다.
  1500년대 초 명월(明月)이라 불리었던 기생 황진이. 그녀는 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고자, 현모양처와 여필종부를 요구하는 폐쇄적인 공간인 안방을 떨치고 나와 기방을 선택했다. 사대부 중심의 봉건 시대에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방은 기생의 방뿐이었다. 어려움과 외로움, 고통과 추위조차 행복으로 받아들였던 요시코처럼 황진이 또한 당당하게 자신의 방을 선택했던 것이다. 황진이는 스스로 선택한 그 자리에 충실하고 자신의 감정에도 진솔하게 그녀의 삶을 노래로 담아냈다.

冬至ㅅ달(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버혀내어
春風(춘풍) 니불(이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넣었다가)
어론(사랑하는)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2)

  
  스스로 선택한 기방이지만 인습은 그녀를 완전히 자유롭게 놓아두지 않았던지, 기나긴 겨울밤의 시린 고독을 노래했다. 그러나 황진이는 서리 같은 시대에 자신의 사랑을 따라 용감하게 자기의 방을 선택해 그 아픔을 감내했던 것이다. 어쩌면 가부장적인 양반사회의 체면치레를 확 벗겨내는 일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다음 호에 계속)


1) 김승희, ‘나혜석 콤플렉스’, [달걀 속의 生(생)], (주)문학사상사, 1989. 6. 175-178에서 발췌.

2) 황진이, 권두환 엮음, [고전시가-한국문학총서1)], (주)해냄출판사, 1997. 2.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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