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화양연화(花樣年華)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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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화양연화(花樣年華)2
  • 한들신문
  • 승인 2023.02.2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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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소설가)
화양연화 포스터(출처: 네이버)

 

김영하의 소설 <당신의 나무>는 ‘당신’과 여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랑 그리고 그악스럽게 얽혀드는 삶의 인연을 통해, 사랑이 서로를 파괴하면서도 동시에 서로를 지탱하는 모순된 것임을 앙코르 와트 판야 나무의 뿌리와 사암의 관계로, 그리고 사랑과 이별, 여행과 깨달음, 귀향과 화해의 가능성이라는, 중층적 구조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사랑이라는 기제(機制) 속에 모순되게 존재하는 인간의 이기심, 불안, 고독, 소외 등을 ‘앙코르 와트 여행’이라는 장치를 빌려 극복하고 정화하는 이야기이다. 
  <당신의 나무> 마지막에, 해맑게 웃으며 사람살이의 비밀을 알려준 승려의 말이 씨앗이 되어 ‘당신’은 이제까지 해 본 적이 없던 생각을 하게 된다. “혹, 당신이 그녀의 나무는 아니었는가. 상담자라는 지위가 가진 매력을 후광 효과로 삼아 여자를 유혹하고 당신이 편안할 때마다 섹스 파트너로 삼았던 것은 아닌가. 오히려 치료를 받았던 건 당신이 아니었는가.”
  가해자와 피해자, 주체와 객체가 뒤집히는 인식의 일대 전환이 일어나면서 ‘당신’은 사랑에 관해 한층 성숙한 인식에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 “당신은 한 여자에게 전화를 건다. 자신이 뿌리를 내려 머리를 두 쪽으로 쪼개 버린 한 여자에게 말이다. 네 몸이 그립다. 안고 싶고 빨고 싶고 네 속으로 들어가 똬리를 틀고 싶다. 나무와 부처처럼 서로를 서서히 깨뜨리면서, 서로를 지탱하면서 살고 싶다.”라고. ‘당신’의 말에 여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당신’은 이제 그 여자에게로 갈 것이다.

  이 소설을 만났을 당시, 나는 판야 나무의 뿌리만큼이나 친친 감긴 갖가지 업장들 속에 옥죄여있었다. 내가 가졌던 것은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고 전화마저 끊은 채 거의 모든 사람들과 단절하고 나만의 세계 속에 나를 가두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내게 남아있는 것마저 잃을까 저어하며, 사랑 앞에서조차 자기를 방어하고 도망치기에 바빴다. 내가 구축해놓은 나의 존재양식이, ‘나’라는 아상(我相)이, 사랑이라는 작은 씨앗에 의해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이기적인 자기보호 본능만이 불쑥불쑥 고개를 치켜들곤 했다. 
  나는 ‘당신’처럼 앙코르 와트에 가서 판야 나무뿌리가 버텨내는, 견고한 생명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사랑이 때로는 나를 무너뜨리고 부수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 사랑 때문에 돌처럼 삭막한 현실을 버텨낼 수 있음을, 그래서 그 사랑으로 인해 서로 얽혀 십 년 이십 년 백 년 마침내 천 년을 함께 살아낼 힘을 발견하고 또한 그 힘으로 버텨내고 싶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갈 새로운 의지를 회복해 현실을 지탱해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는, 경제적인 상황뿐 아니라 그 모든 입지가 나로 하여금 앙코르 와트를 향해 떠날 수 없게 만들었다. 앙코르 와트를 향한 <당신의 나무>는 내 머릿속에서 씨앗으로 자리를 잡고 그 촉수를 조금씩 뻗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2. 왕가위의 <화양연화>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는 앙코르 와트에 대한 상념의 뿌리가 점점 뻗어나가 마침내 나의 뇌리 깊숙이 뿌리내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 번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나무는 그악스럽게 그 뿌리를 뻗치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나의 마음을 온통 앙코르 와트로 향하게 만들었다.

  ‘화양연화(花樣年華)’는,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으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의미한다. 영화에서 중국의 전통적인 옷, 치파오(旗袍)를 입은 장만옥의 농염한 이미지로 그려낸, 원숙미의 절정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1962년 홍콩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주로 상하이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거주하는 한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이 아파트에 두 가구가 동시에 이사를 온다. 무역회사에서 비서로 일하는 수 리첸(장만옥 분)과 그녀의 남편, 그리고 지역 신문의 데스크로 일하는 차우(양조위 분)와 그의 아내가 그들이다. 
  수 리첸의 남편은 사업상 일본 출장이 잦다. 차우의 아내 또한 호텔에서 일하는 관계로 자주 집을 비운다. 그래서 차우와 리첸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차우는 리첸이 아내와 똑같은 핸드백을 가지고 있으며, 리첸은 차우가 남편과 똑같은 넥타이를 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배우자가 자기들 몰래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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