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화양연화(花樣年華)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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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화양연화(花樣年華)4
  • 한들신문
  • 승인 2023.03.2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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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소설가)
영화 포스터(출처 : 네이버)
영화 포스터(출처 : 네이버)

3. 왕가위의 <2046>
왕가위의 영화 <2046>은 <화양연화>의 후속편으로 2004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자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다. 영화 <2046>은 1966년, 유혈혁명으로 사회 시스템 전반이 마비되고 먹고살기조차 어려워진 홍콩이 배경이다. <2046>은 전작 <화양연화>에서 차우(양조위 분)가 머물렀던 객실 번호로,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50년, 홍콩의 일국양제1)가 끝나는 2047년 직전의 시점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화양연화> 속 차우는 리첸을 떠나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캄보디아로 떠돌아다녔는데, <2046>에서는 캄보디아에서 싱가포르로 그리고 문화혁명이 한창인 홍콩으로 되돌아온다. 오래전 앙코르와트 사원 석벽에 사랑의 비밀을 봉인한 차우는 희미하게 지나간 날들을 기억할 뿐이라 했지만, 리첸과의 사랑을 추억하기 위해 동방호텔 2046호에 머문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묻으려 할수록 차우의 고통은 더욱 크다. 
  그런데 그 방에서 묘령의 여인이 자살하는 바람에, 차우는 옆방인 2047호에 투숙하게 된다. 그리고 2046호에는 고급 콜걸인 바이 링(장쯔이 분)이 투숙해 차우의 관심을 끈다. 둘의 관계가 장난처럼 시작되고 점차 바이 링은 차우를 사랑하지만,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차우는 끝없이 다른 여자들을 탐한다. <화양연화>에서 차마 하지 못했던 욕망을 대신 채우려는 듯, 차우는 먹고 마시고 떠들고 섹스하면서 인생을 탕진한다. 그러나 그런 위악적인 모습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은폐하기 위한 강박적인 행위일 뿐이다. 그는 과거의 사랑 때문에 자신을 거부하는 여자에게 “과거에서 벗어나면 내게로 돌아오라.”라고 말하지만, 그건 자기 자신을 향한 애원이자 탄식이다. 기억과 과거를 상징하는 ‘2046’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차우는 진정으로 그걸 원하는지 또한 가능한 건지도 확신하지 못한다. 
  차우는 동방호텔에서 환상으로 가득한 미래 소설을 쓴다. 차우의 과거는 그의 소설, SF판타지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는 미래에 대해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영구히 지속되는 과거’에 대해 쓰고 있는 셈이다. 잃어버린 사랑의 기억을 찾는 차우는 남자 주인공을 ‘나’라 칭하고, 그에게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욕망을 투사한다. 소설 속의 ‘2046’은 미래의 시간인 동시에 기억 속의 욕망과 꿈을 끄집어내는 숫자이다. 또한 ‘2046’은 과거의 공간이자 실제의 공간이며 정신적인 공간으로,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영원한 장소이다. 
  왕가위 감독은 영화 <2046>에서 로맨틱한 과거와 꿈결 같은 미래를 혼합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와 <바바렐라>3)에 비견하는 SF적 미장센으로, 아찔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잃어버린 기억을 복원하려는 사람들은‘2046행 열차'에 몸을 실은 채 과거를 중심으로 무한히 순환하는데, 2046년을 향해 떠나는 애니메이션 기법의 열차와, 무채색의 선과 면으로 펼쳐지는 미래 도시의 풍경은 스산하다. 과거와 미래의 공간은 시간의 단면을 보여주듯 빠르게 지나가면서 물 위를 유영하듯 흘러, 고독한 영혼의 방황과 상실감, 허무가 제자리를 맴돌고 있음을 표현한다. 화면은 시공간의 한계를 무너뜨리고 색채는 탐미적이다. 
  문화혁명의 자장 안에 있던 1966년의 홍콩으로부터 먼 미래로 상정된 미지의 세계를 반복적으로 넘나드는 이 영화는, 지금껏 쌓아온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은 홍콩의 불안과 열정, 허무와 쾌락의 공기를 담아내고 있다. 
  왕가위는, ‘화양연화’가 사랑할 때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뜻하듯, 영화 제목 <화양연화>는 홍콩이 가장 아름답던 시절을 의미한다고 했다. <2046>에서는 그 여인과 함께 하고자 했던 애틋한 사랑을 추억하면서, 과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남자의 초상을 공들여 보여줌으로써, 홍콩 반환이라는 시간으로 치닫고 있는 공간에서, 과거에 집착해서도 과거를 부정하거나 망각해서도 안 된다며, 왕가위 스스로 다짐을 하는 것 같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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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국양제 : ‘한 국가 두 체제’라는 뜻으로, 중국이 한 국가 안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를 모두 인정한다는 방식이다. 홍콩, 마카오가 적용되고 있다.
2) 아서 C. 클라크가 쓴 소설이며, 그에 기반해 1968년 미국에서 개봉한 최초의 SF 영화로,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했다. 소설과 영화 둘 다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SF 장르를 논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소설과 영화이다.
3) 로제 바딤 연출, 제인 폰다 주연의 1968년 제작된 B급 SF 영화로, 40세기에 지구연방 대통령의 명령을 받고 실종된 과학자 듀란 듀란을 찾기 위해 떠나는 우주 여전사 바바렐라의 모험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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