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모두를 사랑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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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모두를 사랑할 수 있게
  • 한들신문
  • 승인 2023.03.1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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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빌라 생활재활교사 정진호

휴대전화 속 장바구니를 한참 들여다보다 포기하고 돌아섭니다. 세상에 갖고 싶은 물건은 많고,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일도 얼마나 많은지 고민과 선택의 연속입니다. 마음 가는 대로만 할 수 없는 어른이니 이런저런 기준을 두고 ‘잘’ 선택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이번에 고민한 물건은 쿠션이었습니다. 소파 위에 두는 쿠션! 평소라면 장바구니에 들어오지도 못할 품목인데, 고민하게 된 이유가 있었습니다. 검은색 토끼 모양이었기 때문인데요. 올해가 또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癸卯年) 아니겠습니까? 계묘년에 검은 토끼 아이템 하나쯤 들이는 건, 구미가 당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23년 계묘년 새해에 들어서는 순간에는 어디로 운전하는 중이었습니다. 평소라면 좋아하는 노래를 들었을 텐데, 검은 토끼 쿠션 쇼핑과 같은 이유로 라디오 방송을 틀었습니다. 새해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거든요. 일 년에 한 번, 새해를 맞이하며 외치는 카운트다운은 놓치기 힘든 이벤트입니다.
  “10, 9, 8, 7, 6, 5, 4, 3, 2, 1!” 라디오 DJ가 10에서부터 1까지 거꾸로 숫자를 센 끝에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작심삼일이라지만 또 어떻습니까? 한 해의 시작에 삼일이라도 애써 마음에 품는 일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새해를 맞는 여느 사람과 같이 마음속 소망이랄까, 다짐이나 기도랄까 하는 것을 품었습니다. 올해는 이렇게 빌었습니다. ‘모두를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참으로 이루기 어려운 소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소에 모두를 사랑할 만큼 너그럽게 산 것도 아니고, 해가 바뀌었다고 하루아침에 천지개벽이 일어날 것도 아닌데 말이죠. 미약하게나마 절반에라도, 아니 그 절반의 절반에라도 닿기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기 바란다고, 그러고 싶다고, 그렇게 노력해 보겠다는 결심의 표현이었습니다. ‘모두를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렇게 말한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매일 일어나면 직장으로 출근하고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며 의미 있게 사는 사회인으로 새해에 좋은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기 때문인데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작부터 끝까지 대신 챙길 수는 없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품은 뜻과 마음을 잘 헤아리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선택하여 맡은 역할, 잘 감당하고 해내기 바라는 자신을 향한 응원이기도 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시작한 새해도 무척 바쁘게 흘렀습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난다는 게 아쉬운 순간도 있었고, 감사한 때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힘들거나 고통스럽게 하루를 보내지 않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살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요. 정신 차리고 보니 1월이 어느새 끝나 가고 있습니다. 한 달이 훌쩍 지나갔네요. 새해 첫 달의 끝에 다다라 ‘10, 9, 8, 7, 6, 5, 4, 3, 2, 1!’ 할 때의 소망을 돌이켜 생각해 봅니다. 지금 나는 어떤가요? 그렇게 살고 있나요? 스스로 묻습니다.
  점수로 매긴다면 딱 50점쯤 될 것 같습니다. 다행이라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럴 수 있다면, 다행인 것은 제가 생각할 때 저는 객관적으로 자신을 볼 줄 아는 사람이면서도, 거기에 상처받거나 절망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50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노력은 하고 있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하루하루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다잡고,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에 가까워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시나브로 많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바쁘게 지나가는 하루하루는 대개 지나고 나면 기억에서 휘발되어 흩어질 때가 많지만, 중요한 날은 오래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이나 친구의 생일, 오래 간직하고 싶은 기념일,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새해 첫날과 마지막 날은 시간이 지나도 뭘 하고 있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누가 물으면 대답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2021년 마지막 날(실제로는 마지막 날의 전날)에는 친구들과 해돋이를 기다리며 이미 불어버린 컵라면을 먹었고, 2022년 마지막 날에는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어디로 가고 있었습니다. 올해 마지막 날, 무엇을 하며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요? 그때의 저는 새해 첫날 그 소원처럼 모두를 사랑하는 사람에 가까운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요? 그러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때의 저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요. 기다려 봅니다. 자신의 미래를 궁금해하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검은 토끼 쿠션은 아직 못 샀지만, 대신 검은 배경에 하얀 토끼가 그려진 필통을 샀습니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지는 것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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