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그저 좋아서 소개합니다’
상태바
[청년] ‘그저 좋아서 소개합니다’
  • 한들신문
  • 승인 2022.12.12 17: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평빌라 생활재활교사 신은혜

어느덧 올해의 마지막 달입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 좋아했던 것들을 마음껏 나누기로 합니다. 


서랍, 그 속에서 서로의 기억과 각자의 사정
  ‘서랍’은 드라마 ‘그해 우리는’의 OST입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서사를 고루 볼 수 있어서 좋아한 드라마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매화 초반, 등장인물 각자의 사정을 보여주는 장면들입니다. 같은 시기에 서로를 기억하고 있지만, 사실은 서로 전혀 알지 못했던 그 사정들이 사뭇 마음에 남았습니다. 
  내가 완전히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것처럼, 내가 아는 누군가도 역시 그렇겠지. 내가 채운 기억과 내가 알지 못하는 그 공백들을 인정하고 그저 헤아리며 함께 하기로 합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누구나 갖고 있었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제가 사랑해마지않는 배우, 김태리가 나온 드라마입니다. 자우림이 부른 동명의 곡 역시 좋아합니다. ‘누구나 갖고 있었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그 곡을 작곡한 자우림 김윤아 씨의 설명입니다. 청춘은 누구에게나 있고, 누구나 지나갑니다. 드라마에서는 그 반짝이던 시기가 영원히 이어지지 않고, 시간이 훌쩍 지나서는 주인공이 기억조차도 잘하지 못합니다. 노래 가사처럼 영원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죠. 
  그런데 그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었고요. 아무리 붙들고 싶은 순간도,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순간도 반드시 흘러가게 되잖아요. 그래서 더 소중하고 견딜 만하게 여겨지는 것 같아요. 

Mystery of Love, 내 감정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번에는 영화입니다. ‘Call Me By Your Name’을 봤어요. 이후에 영화 ‘윤희에게’를 연달아 봤습니다. 두 편 다 동성애를 다루었고 영상미가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이 영화들을 보며 내 감정의 본질에 대해 좀 더 들여다보고 싶어졌어요. 우리의 감정에는 감정 자체가 무엇인지보다, 관계에 의해 감정을 규정짓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거든요. 
  예를 들어, 상대가 남녀 사이면 우정에 가까운 감정이라도 사랑으로, 동성이라면 사랑에 가까운 감정이라도 우정이라고 정리하는 식으로요. 나의 감정을 잘 들여다봐 주는 것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호흡, 더 나아지지 않더라도
  올해의 큰 수확,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소개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알게 된 것입니다. 감독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태풍이 지나가고’를 가장 좋아합니다. 무언가 더 나아지지 않았지만 괜찮은 것 같기도 한 결말이 마음에 들었고, 아들과 어머니, 손자, 며느리를 둘러싼 그 복잡다단한 감정선도 인상적이었어요. 
  특별히 대사가 많거나 드라마틱한 전개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 감정들이 온전히 전해진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 나오는 OST, 심호흡도 좋았고요. 주인공의 결말이 꼭 잘 끝나지 않더라도,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좋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저에게도 같은 느낌으로 위로해 주는 것 같았어요. 

겨울잠, 에서 깨지 않는 할머니를 향한 추모
  제가 아주 좋아하는 국민가수 아이유가 20대 끝자락에 대단한 앨범을 발매합니다. 바로 ‘조각집’. 그중에서 제가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들었던 곡은 ‘겨울잠’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떠난 후 1년 동안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인데요, 
  저는 이 노래를 들으면 저희 할머니가 생각납니다. 저를 지켜주었던 어른들이 어느새 제가 지켜드려야 할 어른이 되어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돌아가신 할머니만 저를 지켜주었던 어른으로 영영 남았네요. 요즘 자주 할머니가 보고 싶어요. 그래서 이 노래를 듣습니다. 어느 겨울, 깊은 잠에든 할머니를 생각하면서요. 

  이렇게 한 해가 지나갑니다. 내가 좋아한 것들을 보고 듣고 떠올리며 1년을 보냈습니다. 22년은 곧 돌이킬 수 없는 때가 되겠죠. 지금을 기억하며 본질에 충실한 사람이 되자 다짐합니다. 더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아요. 어느새 저도 얼마쯤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올해의 12월은, 그저 즐겁게 보내려 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