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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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여정’
  • 한들신문
  • 승인 2023.06.0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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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빌라 생활재활교사 신은혜

제 이름은 ‘신은혜’입니다. 한자로는 은혜 ‘은’, 은혜‘혜’자를 씁니다. 뜻과 이름이 일맥상통한 이름이죠. 어머니께서 직접 지었다고 합니다. 언젠가 어떤 이유로 제 이름을 은혜라 지었는지 여쭤보니, 누군가에게 입은 은혜를 잘 알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저는 어릴 적, 이름에 따른 인생을 충실히 살았던 것 같아요. 고마웠던 것은 나도 꼭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요. 이름 뜻을 너무 곧이곧대로 따른 나머지 수중에 용돈이 없을 때는 친구가 내미는 아이스크림 하나도 쉽게 받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고, 언젠가 생일에 친구가 조금은 과분한 선물을 주었다 싶어 부모님께 이걸 받아도 되냐며 진심 어린 고민을 호소하기도 했답니다. 누군가의 호의, 은혜라는 것이 물론 고맙고 기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제 안에 이런 은혜들이 어느새 차곡차곡 쌓여 언젠가 반드시 돌려주어야 하는 빚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거죠. 선의를 선의로 보답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고, 선의에 답하는 데 서툴렀던, 어린 날의 좌충우돌이 얼마쯤 있었던 시기라 생각합니다. 

  그때의 저는 그 짐들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서 급기야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내기로 합니다. 코로나 시기도 아닌데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자진해서 실시한 거죠. 타인의 호의를 그 무게와 격을 따져 제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수용했던 것 같아요. 물론 거절할 때도 친절한 모습으로 선을 그었을 테니 그때의 저는 깍듯하고 상냥한 듯 보이지만 어쩐지 친해지지는 않는 것 같은, 그런 사람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도왔는지 어느 시기에나 저를 포기하지 않고 깨우쳐 준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었어요. ‘누군가의 선의는 그렇게 받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풀 때도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너는 선을 긋고 있지만 나는 그 선 너머의 무언가를 너에게 보여주고야 말 테다’ 하는 사람들. 물론 그 사람들이 저에게 그런 마음을 먹고 다가왔다고 말하지는 않았어요. 단지 그들과 함께하며 제가 그렇게 배우고 느꼈을 뿐.

  언제부턴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호의를 돌려주고 싶었던 건 당신의 마음을 내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고맙다고 표현하고 싶어서였는데, 어느 순간 내 안의 감사는 그걸 받아들이기도 전에 돌려주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다는 걸요. 내가 호의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건, 그 호의 자체가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사실은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란 걸요. 누군가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베풀고 응원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며 선의를 감사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감사를 감사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어요. 아마 저희 어머니도 이러한 뜻으로 이름을 지으신 게 아닐까요?
  어릴 적에는 무거웠던 제 이름이 지금은 좋습니다. 어머니가 이름 지으며 바라던 대로, 그렇게 살아가면 좋겠다 싶습니다. 지금도 호의를 받아들이거나 표현하는 것이 서툴고 어려운 면이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조금은 가볍게, 감사를 받아들이고 감사를 표현하려고 합니다. 감사를 돌려주는 것보다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베푼 호의에 감사함을 느끼고 곱씹는 것을 먼저 하려고 해요. 그러다 보면 고마움을 표현하고 알리고 싶다는 생각도 자연스레 생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곁에 머물러준 이들에게, 끊임없이 저를 깨우쳐 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은혜 은, 은혜 혜, 은혜. 은혜를 알고 은혜를 표현하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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