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리브’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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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리브’를 바라보며
  • 한들신문
  • 승인 2023.10.1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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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빌라 생활재활교사 신은혜

집에 화분을 들였습니다. 직장 동료가 선물해 주었는데요. 다 자라면 미니해바라기가 될 거라 했습니다. 무척 잘 크는 아이라 볼 때마다 키우는 재미가 있을 거라고 했어요.

  저는 생명을 돌보는 일에 아주 서툰 사람입니다. 그동안 화분을 몇 번 선물 받은 적이 있는데요. 그때마다 그리 길게 살아내지 못하고 떠나보냈답니다. 그런 경험이 쌓여 나는 식물을 키우지 못하는 사람인가보다. 라는 생각에 스스로 화분을 들이지는 않았어요. 이런 제 생각을 전하면 몇몇 지인들이 또 두 달에 한 번만 물을 줘도 충분한, 거의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법한 식물을 선물합니다. 아마도 생명을 돌보지 못한다는 제 말에 마음이 쓰여서겠죠. 하지만 그렇게 키우기 수월하다는 식물들도 제 손에서만큼은 더 자라지 못했어요. 그렇게 하나둘 생명을 떠나보내며 참 안타까웠답니다.

  그래서 이번에 미니해바라기 화분을 들이면서도 걱정이 많았어요. 주인을 잘못 만나 엄한 생명 하나가 싹을 틔우지도 못하고 떠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요. 괜찮다고, 잘 클 거라는 동료의 격려에 힘을 얻어 화분을 데려왔습니다. 다음 날, 미니해바라기 키트 뒷면에 적힌 설명서를 읽으며 화분에 흙을 깔고 씨앗을 심었습니다. 물을 주고 집에서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 화분을 놓고 이름도 지었어요. 부디 죽지 말고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리브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화분을 선물 받고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함께 씨앗을 심은 다른 동료들의 화분에서는 어느덧 싹을 틔웠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리브는 아직 씨앗 속에서 잠자고 있어요. 이러다 영영 싹을 틔우지 못하는 건 아닌가, 라는 마음으로 조금 초조하게 매일 리브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오늘 함께 해바라기를 키우는 한 동료에게서 추석 인사 겸 메시지가 왔어요. 아침 식사를 하기 전, 화분에 물을 주고 햇빛이 드는 쪽으로 화분을 가져다 두면서 그런 생각을 했대요. 우리는 기꺼이 수고를 들여 아무것도 아닌 일에 마음을 쓰는 사람들이라고요. 그 표현이 참 좋았어요. 늘 리브를 애타는 마음으로 바라보던 저에게 얼마쯤 위안이 되기도 했고요. 리브는 지금까지 그러했듯 저의 집에서, 제 손에서 끝내 싹을 틔우거나 꽃을 피우지 못하고 떠나보낼 수도 있겠죠. 그렇게 된다면 저도 낙담하지 않을 수 없겠고요. 어쩌면 리브를 들인 것 자체를 후회할 수도 있겠어요. 다른 주인을 만났다면 예쁜 꽃을 피울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저에게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건, 제가 여전히 이런 일에 마음을 쓰고 수고로움을 감수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에요. 어차피 떠날 생명이라고 미리부터 포기하거나 사랑을 주지 않는 게 아니라, 끝끝내 죽을지언정 그때까지는 기약 없이 물을 주고, 햇볕을 쬘 수 있게 하고, 매일 말을 걸며 들여다보는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이 스스로 위안이 되었어요. 비록 사랑하는 일에 서투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을 포기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이 저라는 사람을 꽤 괜찮게 바라보게 하고, 또 동시에 리브를 더욱 사랑으로 바라보게 했고요.

  생명을 들인다는 건 이런 의미인가 봅니다. 꽃 피우고 열매 맺는 것도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 생명을 돌보기 위해 사랑을 쏟는 일 자체가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걸 알아갑니다. 어느덧 가을이에요. 지난날 사랑을 쏟은 많은 것들이 결실을 보는 계절입니다. 꽃과 열매와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각자 사랑을 베풀고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며 저의 리브와 함께 이 계절을 지내려 합니다. 가을이 가기 전, 부디 리브가 잘 살아낼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언제까지나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 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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