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그해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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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그해 여름’
  • 한들신문
  • 승인 2023.08.1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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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빌라 생활재활교사 신은혜

여름입니다. 저는 거창의 여름을 참 좋아해요. 여름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 나온 그 푸르른 이미지가 거창에서는 선명히 드러나거든요. 햇볕 쨍한 날 운전하며 창밖을 바라볼 때면 하늘과 나뭇잎과 여름 공기의 색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그러다 더위에 지칠 때쯤 시원하게 비가 내리면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또 얼마나 좋은가요. 사실 더위에 약한 탓에 여름이라는 계절이 다가올 때면 늘 얼마쯤 두렵고 걱정이 앞서는데요, 그런데도 거창의 여름은 저에게 아주 매력적인 계절이랍니다.

  올해 여름은 꽤 바빴어요. 개인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가득해서 하루하루 빼곡한 일정을 숨돌릴 틈 없이 해내다 보면 해가 뜨고 또 별이 뜨기를 반복했어요. 여름의 막바지, 이제 한숨 돌릴 여유를 찾았습니다. 바쁜 만큼 보내기 아쉬운 기억들이 많아요. 조금 이른 것 같지만, 이 기억과 감정들이 옅어지기 전에 이 계절을 돌이켜보고 싶습니다.

 

여름의 기억

  올해 여름은 어느 때보다 추억이 많아요. 아마 평소의 저라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짧은 기간에 모조리 했던 것이 이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참으로 여름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인데요, 우선 여름휴가를 가지 않습니다. 여름휴가 기간이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은 직장에서 일했기에 여름에는 쉬지 않았어요. 덥고 복잡한 휴가철이 지나간 후에 쉬는 걸 선호했죠. 그러다 보니 여름에만 즐길 수 있는 물놀이를 비롯한 이러저러한 추억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올해는, 여름에 누릴 수 있는 것을 잔뜩 누렸어요. 직장에서 워크숍으로 동료들과 실컷 비 맞으며 놀고, 또 학생들 실습 지도하며 트래킹도 하고, 이곳저곳을 누비며 지냈어요. 여름 볕은 참 뜨겁고 그래서 이 계절에 내리는 비와 계곡물은 참 시원하다는 걸 가득히 느꼈습니다.

 

나눈 마음들

  제가 하는 일은 사회사업이라 불리는 일인데요, 사람을 사람답게, 사회를 사람 사는 사회답게 이루기 위해 애쓰는 일이랍니다. 올해 이 일을 배우고 싶다고 찾아온 학생들이 있었어요. 얼마나 열심히 배우고 신나게 활동을 하던지. ‘월평 세 자매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그 친구들을 보며 저도 많이 배우고 즐거웠어요. 무더운 날씨, 빠듯한 일정에 지칠 때도 있었지만 그 친구들을 보면 어느새 웃음이 나더라고요. 함께하는 누군가로부터 힘을 얻고, 온전히 그 힘으로 일하는 경험이 낯설었어요. 그 친구들과 공부하며 사람이 사람에게 의지한다는 것, 사람이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그러면서 동시에 저를 되돌아보게 되었어요. 저는 누군가에게 곁을 내어 준 적이 있었을까, 혹은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헤아려 주었을까 하고요. 저는 대개 누군가와 있을 때 제가 힘을 내는 쪽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마저도 누군가 제가 모르는 사이 저에게 맞춰 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힘을 낼 때는 함께 힘을 내어주고, 또 잠깐 지칠 때는 함께 기다려 주면서요. 위로의 말이나 손길을 건네지 않아도 나름의 방식으로 조용히 저에게 맞춰 주고 있었을 어떤 마음들이 떠올랐어요. 참 신기하죠. 그때는 몰랐던 것들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어느 시기에 자연스레 전해지고 깨달아진다는 사실이요.

안녕

  오늘 올해의 여름을 채웠던 많은 것들과 이별을 고했습니다. 우선, 제가 참 좋아했던 월평 세 자매가 실습을 끝내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자연스레 저를 꽤 바쁘게 했던 일정도 일단락되었고요. 긴 시간 연락을 주고받던 전국 각지의 동료들과도 다시 만날 날까지 잘 지내라며 인사를 나누었어요. 7월에는 비가 오는 날이 참 많았죠. 어느덧 7월 막바지가 되었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기나긴 장마도 지나간 듯합니다. 아쉽지 않은 이별이었어요. 모든 게 잘 끝났고, 앞으로도 안녕하길 바랍니다.

 

아직도 이 계절은 남았고

  여전히 여름이네요. 이제는 본격적으로 무더위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덕분에 이 여름이 남긴 것들을 너무 빨리 정리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도 이 계절은 남아있으니까요. 남은 여름, 여름이 남긴 것을 천천히 돌아보며 보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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