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새미등산기#13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의 품에 안기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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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새미등산기#13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의 품에 안기다(3)
  • 한들신문
  • 승인 2023.03.2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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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정식

트레킹 5일째 : 시누아에서 데우랄리까지  
  벌써 트레킹을 시작한 지 5일째다. 이제 지금까지 보아 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마을을 따라 그들의 생활을 느끼며 걸어왔다면 이제부터는 트레커들을 위한 롯지들만 있는 마을을 걷게 된다. 오른쪽으로 깊은 모디콜라 강을 끼고 양쪽으로 끝 모를 산들에 압도당한다. 
  본격적으로 안나푸르나 여신의 품으로 깊이 들어가는 길이다. 장엄한 대자연 앞에서 한껏 작아진 나,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이 내밀한 충만함으로 채워지는 것은 위대한 자연이 보잘것없는 나까지 포근히 감싸고 있기 때문이리라.

  도반(2,600m)에서 점심을 시켜놓고 롯지 한편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찬송이 조용히 울려 퍼질 때 우리는 간혹 목이 메었다. 사실 말이 필요 없는 예배였다. 이곳에 있는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예배이고 기도이기 때문이다. 

  이제 고도 3,000m를 넘어 서기 시작한다. 서서히 큰 나무 종류가 없어지고 작은 관목이 주류를 이룬다. 어디선가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보았더니 폭포의 얼음이 녹아떨어지는 소리이다. 시누아를 출발한 지 8시간이 지나서야 오늘의 목적지 데우랄리(3,230m)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수기인지라 몇 개의 롯지 중에서 딱 한 군데만 문을 열었는데 왠지 서글프고 썰렁하다. 우리나라 대학생 두 명과 중년부부, 그리고 서양 여자 한 분과 그에 따른 포터가 전부였다. 저녁은 유달리 춥고 음산했다. 하지만 밖에 나와 본 밤하늘은 놀라움과 두려움, 경외(敬畏) 그 자체였다. 
  사방에 끝 모를 고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밤하늘은 곧 쏟아질 듯한 별들로 가득하고 그들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도반에서 바라본 마차푸츠레
도반에서 바라본 마차푸츠레
MBC에서 우리 포터들과 함께
MBC에서 우리 포터들과 함께

 

트레킹 6일째 : 데우랄리, 마차푸츠레 베이스캠프(MBC),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데우랄리의 밤은 추웠지만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왔다. 8시 10분 출발한 우리는 고소에 적응해야 한다며 ‘비스따리’를 외치며 천천히 걸었다. 조급증을 견디지 못한 진호님은 포터를 따라 일찌감치 달아나고 혼자만 보낼 수 없다는 귀순님도 남편을 따라 줄행랑을 쳤다. 우리가 마차푸츠레 베이스캠프(MBC 3,700m)에 도착한 것은 11시가 좀 넘어서였다. 

  MBC에서 바라본 마차푸츠레(6,997m)는 과연 압도적이었다. 고개를 바짝 치켜들지 않으면 끝이 보이지 않는다. 표고 차가 3,300m나 있는 거대한 산이 바로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해 보라! 게다가 밑에서 피어오르는 구름이 중간 허리를 감고 있어 신령스런 기운까지 감돈다. 아! 이것이 자연이 만들어 낸 장엄한 예술 작품이요, 웅장한 오케스트라이며 설산의 대서사시이지 않겠는가! 이곳에 내가 서 있다니 꿈만 같다.  

  롯지 벽면에 한국말로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환영합니다. 이곳은 아름다운 MBC입니다. 이곳에 한국어를 잘하는 <까르마 구릉> 아저씨가 계십니다. 아저씨와 함께 즐거운 추억을 만드세요!!”
  얼마나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길래 이런 글귀까지 써 놓았을까? 푼힐에서도 그랬고, 여기에서도 여기저기 우리말이 들려온다. 전에는 일본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이제는 한국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단다. 구릉 아저씨는 한국에서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 이 롯지를 샀다고 한다. 붙임성이 좋은 구릉아저씨는 김치가 너무 맛있다며 우리에게 달라고 해서 가져가기까지 했다. 

  이제 이번 트레킹의 최종 목적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4,130m)를 향해 설렌 발걸음을 옮겼다. 여성 대원들은 이번 트레킹의 성공 여부는 천천히 걷는 데 있다며 인간이 걸을 수 있는 최대한 느린 걸음으로 걸어간다. 그런데 이건 걷는 게 아니다. 굴러가도 이것보다는 빠를 성싶다. 하기야 주변의 경치가 하도 장엄하고 황홀해서 계속 사진에 담느라 느릴 수밖에 없긴 했다.
  
  드디어 MBC를 출발한 지 2시간 30분 만에 ABC에 도착하였다. “WELCOME TO ANNAPURNA BASECAMP”라고 쓴 표지판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와! 우리 모두 이렇게 ABC에 우뚝 설수 있다니, 분명 안나푸르나 여신이 우리를 받아주신 것이다. 모두 흥분된 상태로 저녁을 맞이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 후 오늘 함께 묵을 트레커들과 포터들 모두 20여 명이 커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테이블에는 담요가 덮여져 있고 아래쪽에는 가스난로가 있어서 냄새는 났지만 하반신은 훈훈하였다. 노래 대결이 벌어졌다. 우리가 한곡 하면 가이드와 포터 쪽에서 한곡 하며 번갈아 가면서 부른다. 신명이 날 때면 일어서서 춤도 추고... 그러는 사이 우리 대원들은 고소증세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가벼운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방의 온도는 4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계속)  

MBC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남봉
MBC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남봉
ABC 입구에 있는 환영 표지판
ABC 입구에 있는 환영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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