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띄우다】빤히 쳐다보는 착한 눈 같은, 붉은 사과 한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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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띄우다】빤히 쳐다보는 착한 눈 같은, 붉은 사과 한 알
  • 한들신문
  • 승인 2023.04.10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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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배달부, 염민기 시인

거창 사과를 받고

정일근

농약 치지 않고 농사지었다는 거창 사과를 받고

나무마다 몇 알 달리지 않는다는 거창 사과를 받고

죄 없는 사과나무에 죄 많은 농약 치고

죄 없는 사과 껍질 두껍게 깎아내며

그 독한 죄 모두 사과에게 뒤집어씌우며

사과나무에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고 살았는데

껍질째 먹으라는 거창 사과를 받고

빤히 쳐다보는 착한 눈 같은 붉은 사과 한 알

한입 성큼 베어 먹기 미안한 날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문학과지성사


붉은 사과를 받고 성큼 한입 베어 먹기 미안해하는 시인이나 힘든 것도 잊고 더 달고 맛있는 사과농사를 지으려는 농부나, 그 마음에 찡한 사과향이 난다.

시인도 짓고, 농부도 짓는다. 짓는다는 것은 시인과 농부의 공용어이다. 탐스러운 사과를 짓는데 온갖 정성과 노력이 배어있다는 것을 아는 시인은 먹기에 미안해하고, 농부는 누군가가 먹을 더 달고 맛있는 사과를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각박한 세상살이가 한결 아름다운 것은 아마도 이런 마음들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느 카페 댓글에 있는 말이다. ‘거창사과는 꼭 옷소매에 닦아 먹어야 제맛이랍니다. 그리고 혼자 먹으면 안 되고, 함께 먹으면 더더욱 맛있다는 농업기술센터의 연구결과 ~^^*’댓글처럼 소매에 쓱쓱, 혼자가 아닌 좋은 사람과 함께 먹으며 시인의, 농부의 은은하고 새콤달콤한 마음을 한껏 느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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