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배달부, 염민기 시인
오만데
한글이 다 숨었다는 걸
팔십 넘어 알았다
낫 호미 괭이 속에
ㄱ ㄱ ㄱ
부침개 접시에
ㅇ ㅇ ㅇ
달아놓은 곶감에
ㅎ ㅎ ㅎ
제 아무리 숨어봐라
인자는 다 보인다
『전국 성인문해교육 최우수상, 2019』
일평생을 까막눈이었어도 지혜로 살아온 삶이다
칸이 받아쓰기 공책,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꾹꾹, 반듯반듯 씁니다. 팔 순 을순이는 신이 난 초등 일 학년. 전날 예쁘게 깎아 둔 연필이며 지우개를 필통에 가지런히 챙겨둡니다.
이른 아침 동무들이 “을순아, 학교 가자” 삽짝에서 부르면 부랴부랴 나오며 오늘은 뭘 배울까. 선생님에게 ‘참 잘했어요.’ 파란 스탬프에 빨간 색연필 달팽이 동그라미를 몇 개 받을까 속으로 신이 나고 흥이 나지요.
호미에, 접시에, 곶감에 평생 숨어있는 글자는 ‘니 까지게 머리카락까지 숨어도 인자는 다 보이는’ 우등생 순이에게는 깜냥이 안 됩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칠판을 보며 새로 배우는 낱글자는 마치 소풍날 보물찾기 같은 기쁨입니다.
일평생을 까막눈이었어도 지혜로 살아온 삶, 아는 것만큼 지식이 쌓여가는 그 모습에도 먼저 가슴이 먹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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