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은 말한다-생존자·체험자들의 반세기만의 증언_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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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은 말한다-생존자·체험자들의 반세기만의 증언_24
  • 한들신문
  • 승인 2023.07.1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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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 한인섭 교수
▲거창사건 생존자 정월만 씨. 본 책에서 발췌.
▲거창사건 생존자 정월만 씨. 본 책에서 발췌.

저는 정월만이라고 하구요. 나이는 팔십다섯, 기미년생이요. 난리 때는 서른 두 살이었고. 섣달 그믐날, 인자 그믐이면 그때는 기게방아도 없고, 집에서 떡을 맨들어가(만들어서) 설 쇨 때 아니요? 정월 초하룻날 떡 우려가 (떡국) 끓여먹는다꼬. 그래 농사를지(지어)가지고 그날 인자 떡을 칠라고, 마누라는 치고.

 

군인들 짐 지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그랑께 섣달그믐날, 군인들이 들이닥쳐가지고 짐 지고 갈 사람을 빼내는 기라. 나이 많은 사람은 마 안 되고. 그때 내가 한참 때거든. 그래서 그때 (나를 포함해서) 여섯을 추려가지고 짐을 지고 올라갔어. 무슨 짐인고 져봉께(져보니까) 가벼와. 그래가지고 희안으로 해가지고 과정소재지 온께 아무도 없단 말야. 한 시간 동안 서가지고 있다가 산청읍에 가니께 사람이 없어. 산청군 금서, 그리 올러가니께 거기도 전부 다 비었어. 그날 저녁에 박영수는 위에 가가지고 고만 우리랑 같이 못 왔고, 박대준이 하고 강서진이라 카는 사람하고 나하고 서이서(셋이서) 갔는데, 중대장한테 이까징(여기까지 짐을) 지고 왔응께 우리는 쪽지를 좀 써가지고 좀 보내주시오.” 그리 해가지고 생초로 갔어. 어데로 갈 데도 없고.

그래 지서에 가가지고 누워 잘 데하고 저녁을 해달라고. ‘쪽지 써왔냐고 물어. 그래 있다.’ 그래가지고 (지서에서 가라고 알려준 데로 가니까) 그 사람들이 저녁을 해줘가지고 먹고, 그 집에서 자고. 지금 살림에 아즉(아침)까지 우리가 얻어먹을 수 없으니까. 거기 오니께 고촌이라는 마을이 있어. 거기 올라온께 우리 육촌 자형이 있는데, (거기) 가서 우리 뭐 좀 얻어먹고 가자.” 그래 거(거기) 가가지고 (육촌자형이) 떡국을 끓여줘서 먹고 우짠 일이고그런께, “군인 짐 지고 왔다가 이리 됐다. 그래 거(거기)서 담배 피고 있다가 우리 집에 정월 초하룻날 왔습니다.

 

우리 가족 못 데리고 나왔는데

정월 초하룻날, 인자 집에 오니께 떡국을 끓여주고, 부모님, 형제한테 세배하고. 사람 쥑인 날이 4일날인데(청연마을 학살을 말함 : 원주), 내가 아즉을 먹고 맨 밑에 집에서 사람 서넛이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군인이 와가지고 집에 불을 질러. 그래 집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끄집어내가지고 쥑일 모양이데. 병신 들어, 막 중풍 있는 사람들도 업고 나가고. ‘안 그러면 느그 쥑인다카니께 촌사람이 겁이 나서 안 나갈 수가 어디 있소.

인제 그리로(논으로) 올라강께 군인 가족, 순경 가족을 전부 다 빼내는데, 나는 짐을 지고 갔지만 내가 가족을 안 데리고 나왔는 기라. 인자 그래가지고 데리고 나올라 카니께 옆에 군인이 이 새끼 죽을라고 카나그래. ‘우리 가족을 안 데리고 나왔다, ‘안된다. 안된다고, 못 간다고 총을 겨눠. 그래가지고 나온께 그만 총소리가 나는데 굉장한 기라. 우리같이 그 깨끗한 부류들이 없는데, 이게 우짠 일이고.

논에 얼음이 꽉 찼는데, (사람들을 거기에) 세워가지고 쥑이는데, 논이 전부 피가 뻘거이(빨갛게), 그런 기라. 그래 (짐을) 짊어지고 이제 우리 가족은 죽었다하고 무서워질라고 하고. 그타본께(그러고보니까) 점심 때가 됐어. 그래서 거서(거기서) 점심을 먹고 난께. 군인은 그때 연대본부를 차려가 있고, 인자 그래가지고 즈그는(군인들은) 가고, 우리는 (군인이) “느그는 갈 데로 가거라.” 그래 나느 거창읍에 우리 형님이 있어서 그리로 가고. 인자 그때 그래 됐소.

그 해에 내가 또 농사를 잘 지었는데, 마당에다가 나무를 깔고 스무 가마니를 인자 재워놓고, 그 위에 흙을 덮어놨어. 며칠 있다가 집에 왔는데, 본께 연기가 노라이(노랗게) 막 피어오른단 말야. 이게 아마 나락타는 기라꼬. 또 며칠 후에 또 군인이 와가지고 그 남은 집을 있는 대로 싹 태우고, 전부 재가 돼가지고 있어. 뒤에 두 번 더 와가지고 완전히 싹 다 태웠어요.

 

사람 좋던 군인들이 왜 갑자기

-할아버지 가족 중에서 누가 죽었습니까?

우리 마누라, 또 우리 아들, 우리 장모. 우리 장모가 아들이 없어서 내가 데릴사우로 갔는데, 나만 살고 그 서이(셋이)는 전부 다 총 맞았어. 그때 우리 마누라가 스물 대여섯살 됐을 기라. 그때 아들이 네 살 묵었응께. 장모는 그때 한 51~52세 됐을 깁니다. 우리 마누라가 아들을 업고 죽었어.

 

-가족들이 죽은 그 날, 마을로 돌아온 게 아니고, 죽은 다음날 와서 확인을 한 모양이지요?

. 일이 글치요. 죽은 다음날 와가지고, 내가 나락을 해놓고. 또 가가지고 며칠 있응께, 그때 인자 시체도 못 치웠소. 관의 명령이 있어야 치우지. 그래가지고 인자 거적데기 가가지고(가지고 가서) 본께 우리 아는 이리 총 맞아 나오고, 마누라는 이리 총 맞아 나와있고. 그래가지고 한데 싸가지고 묻었습니다.

 

-섣달그믐날, 그 날은 동네 사람들을 다 안 불러 모았어요?

불러 모으지는 안하고 집집에 댕기면서 짐 지고 갈 사람만 빼낸기라. 그때는 군인들이 사람을 죽이겠다, 그런 거는 없었어. 그때는(내가) 인자 짐 지고 가가지고. 지리산 가가지고 전투할라고. 하는 사람이고, (마을 사람들을) 쥑일란(죽이려는) 맘도 안 묵었던 모양이라. 그래 연대장이 지시를 내린 모양이야. 그 연대장이 사람을 막 쥑이라이캤는가봐.

 

-할아버지는 군인들하고 하루 같이 있었네요?

하루 같이 있었지. 그땐 사람이(군인들이) 좋았어. (우리에게) 욕본다 해쌌코.

 

저 죽을 줄 모르고 살림 타는 것만 걱정

-군인들이 사람들을 죽이는 걸 직접 보셨나요?

하모(물론). 봤지요. 몬 튀고로(못 튀어나가게) 군인들이 싹 둘러쌌지. 논이 여 같으면 나는 우에서(위에서) 봤지.

 

-논에 가족들, 부인, 아들, 장모가 있었을 거 아녜요. 그 모습이 생각납니까?

지금도 생생하게 나지요. 저 죽을 동 모르고 살림하고, 식량 타는 거 그것만 (걱정해서) 울어쌌코. 피신할 줄은 몰랐어. 그래서 그렇게 많이 죽은 기라.

 

-아무도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고요?

하모(그렇지요). 군인들은 쥑일라고(죽이려고) 그래 할 줄은 몰랐어요. 정월 초나흗날 와서 사람들을 쥑인(죽인) 군인들이 우리 짐 지우고 간 군인들이라.

 

-초나흘날도 군인들이 무서운 태도로 나오지는 않았어요?

안 했어. 부량하게(불량하게) 나온 사람은 없었어. 그래 죽일 줄도 몰랐지. 그러니 맘 놓고 나간 기라.

 

-사건이 난 뒤에는 어떻게 사셨어요?

나락을 댓가마니 찌가지고(찧어서), 쌀을 방앗집에 맞긴 거, 그거 갖고 그 해에 묵고 농사짓고 그럭저럭 생활이 돼가지고, 이때끼(이때까지) 명을 보전하고. 재혼해가지고 아들 놓고(낳고), 그래가지고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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