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은 말한다-생존자·체험자들의 반세기만의 증언_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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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은 말한다-생존자·체험자들의 반세기만의 증언_23
  • 한들신문
  • 승인 2023.06.2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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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 한인섭 교수
▲거창사건 생존자 권필달 씨. 본 책에서 발췌.
▲거창사건 생존자 권필달 씨. 본 책에서 발췌.

-교실 안에 있을 때 ‘우리를 다 죽이려고 한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에. 죽이든지, 아이면 때려 팰 것 같애. 그래서 날이 새면 창문을 열고 나갈까, 이런 생각도 했고….

등신들아, 사촌이걸랑 형제간이라고 땡기라고 
- 군인들이 경찰 가족, 군인 가족 나오라는 말을 했지요?
  인자 밤새고 아침에 아저씨들, 젊은 청년들 빼내고, 젊은 각시들, 큰애기들 빼내고, 그 다음에 경찰, 내 아들이 군대 갔거나, 그런 사람들 빼내고, 그리고 가족, 친척들 조사받고 그랬어요. 군인이 모자도 삐딱하게, 어떤 군인은 “등신들아, 사촌이걸랑 형제간이라고 땡기고, 형제간이걸랑 자식으로 땡기고….” 이래 싸면서….

-빼내갈 때 젊은 각시들 먼저 빼내갔다, 그랬죠? 젊은 각시들은 몇 명이나 빠져나갔어요?
  우리 중유에서는 두 명 빼서 나갔지.

-젊은 각시는 빼내가지고 욕보일라 그랬어요?
  그랬다고 하대. 아무 말도 안 했으면 될 건데, 팔푼이 같은 게 목숨만 살았으면 될 건데, 젊은 각시들이 그랬다니까 우리가 알지. 우리야 밥해주러 나간 줄 알았지, 뭐 알았나요? 나도 아이만 없으면 밥이라도 해주러 나가고 싶으던데…. 그래 하나는 이혼당하고 하나는 죽었어.

-그 다음에 젊은 아저씨들은요?
  아저씨들은 일 시킨다고 데리고 나갔고….

-그 다음에 이제 군인 가족, 경찰 가족이 나갔다고 했잖아요? 얼마나 나갔어요?
  나 나가고 나서, 중유 사람은 아닌데, 한 집 가족이 더 나오고는 그만 문을 닫아버리고….

-군인 가족들 많이 빼냈다고 한 사람이 박영보 면장이었나요?
  네. 군인 가족들 많이 빼냈다고 하는 소리가 천장을 쩡쩡 울리는데….

-박영보 씨를 분교학교 말고 신원학교에서도 봤어요?
  아뇨. 그 땐 안왔지. 신원학교에는 군인하고 경찰하고만 있었고 구장이니 하는 사람들은 없었어요.

-그래서 외갓집으로 돌아온 뒤 박산에 직접 가보신 적은 없지요?
  안가봤어요. 나중에 뼈 추릴 적에 밥은 해주고. 집에서 물도 끓여서 이고 가고….

▲신랑이 숨어 있던 풀숲. 본 책에서 발췌.
▲신랑이 숨어 있던 풀숲. 본 책에서 발췌.

낮에는 경찰, 밤에는 산사람들…
  그 화랑부대가 좀 더 신원학교에 머물렀나요?
네. 일주일 만에 먹을 거 갖고 오라고 해서 갔더니, 나한테 ‘여성 동무….’ 이래 싸면서 깜짝 놀랬구만. 깜짝 놀라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면서 가는데, 위에서 노인들이 와서 함께 다니니까 아무 말도 안 하데.

-신랑이 낮에는 숨어 있다가 저녁에는 살짝 내려오고 그랬다는데, 왜 신랑이 낮에 숨었습니까?
  반장이라고 경찰들 오면 또 애를 먹이제, 또 산 사람 오면 애를 먹이제 그러니까 나중에는 남자들이 집에 없어.

-그때 반장이었습니까?
  네. 구장 밑에 심부름꾼. 그러니까 산 사람이 와도 반장, 구장 찾으면 저기 집이 반장이라고 이리 가르쳐줘 버리거든. 그러니까 어째요. 총부리를 몇 번이나 들이댔는지 몰라요. (방아쇠를) 막 땡겨버리려고, 그러면 주위에서 아줌마들이 이 사람, 그런 사람 아니라고, 밥을 내가 해준다고 하면 놔주고, 몇 번이나 죽을 뻔했는지 몰라요.
  피난 시절에는 면장이 찾아오고 그랬지, 그전에는 산 사람 오고 그럴 적에는 면장이 못 왔지.

-산사람들은 가끔 왔었습니까?
  그 사람들은 똑똑 두드리면서 “산에서 왔으니까 놀라지 말라” 하고, 뭐 좀 달라고 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 나 애기 낳았어요.” 그러면 ‘조리하라’고 하면서 가데. 그것들이 순했어. (내가) 아이를 몇이나 낳았는지 몰라. 그럼 문 열고 들어오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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