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은 말한다-생존자·체험자들의 반세기만의 증언_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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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은 말한다-생존자·체험자들의 반세기만의 증언_21
  • 한들신문
  • 승인 2023.05.2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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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 한인섭 교수
▲거창사건 생존자 이덕화 씨. 본 책에서 발췌.
▲거창사건 생존자 이덕화 씨. 본 책에서 발췌.

 

…198호에 이어서
낮에는 일하러 올라가고 밤에는 내려오고

  그래 있으면서 (내가) ‘어머니는 어째 내려오셨나’고 이래 물었거든요. 그래 물응께 아버지가 나올 때는 동네 밖에까지 나왔는데, 어머니는 두고 왔는데, 집은 불타고 있는데, 인자 올라갈라 카니께 군인들이 못 가게 하고, ‘이 사람이(안식구가) 불에 타 죽는다’고 막 사정을 하면 또 발길로 걷어차고…. 그래 올라가니 집이 다 타 버리고 어머니는 나오도 못 하는 기고, 방 안에 갇힌 거예요. 아버지가 인자 들어가서 디꼬(데리고) 나와가지고, 어머니를 업고, 소를 몰고, 내려왔다고 해요. 소는 학교 운동장에 매 놔뚜고….
  그래가지고 일주일 간 (목숨을) 연명만 하고 생활을 했습니다. 고래 생활을 하니까 한번은 집에 올라가가지고 양식 있는 사람은 저 양식을 가져다 먹으라고 이런 연락이 왔어요. 한 4km 되는데, 한 시간 내로 갔다 오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 인자 한 2km, 1km 반 올라가니까 큰 돌이 있는데, 돌 옆에 보니까 그 노인이, 우리 바로 아랫집 바로 노인인데, 연세가 많아요. 눈도 어둡고…. 담뱃대를 물고 요래 웅크리고 돌아가신 기라예. 그때 올라갈 때도 제가 제일 먼저 올라갔어요. 거 여남은살 넘겨 먹은께네 좀 빠리빠리하다 아닙니까. 놀라 뒷걸음을 움찔움찔쳤어요. 본께 저한테 할아버지 되거든요. 우리 집안 할아버지라요. 그래 인자 쳐다보고 올라왔다 아입니까? 올라온께네, 우리 집에는 마침 쌀이 있어요. 죽기 아니면 살기지. 한 시간 안으로 갔다 오라 카는데…. 그래 짊어지고 내려와서 또 피란집(피난해 있는 집)으로 안 갔습니까? 그래 거서(거기서) 생활하다가 우리 당고종형님은 고마 돌아가시고. 당시에 스물여섯 살이라. 거서(거기서) 한 달 이상 있었지 싶어요.
  그래 농사철이라 농사를 짓지 안했습니까. 집이 불에 다 타서 집도 아니지요. 그래가지고 농사를 지으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내려오고…. 내려와서 자고, 올라가서 또 일하고…. 일도 하고 싶은 대로 몬합니다. 해만 넘어가면 내려와야 돼요. 해만 갔다카면 내려와야 되는 거지, 어둡도록 있도 몬하고. 그게 말이 사는 거지 죽는기나 같았습니다. 

▲신원면 거창사건추모공원 인근 박산합동묘역. 본 책에서 발췌.
▲신원면 거창사건추모공원 인근 박산합동묘역. 본 책에서 발췌.

그 때 애들 많이 죽었지요
  교실에는 어떻게 들어갔나요?
  인자 내려오다가 사람들을 만났으니까…. 그러니까 교실로 들어가라고 하니까 한데 인자 들어가는데, 교실에 들어갈 때도 저 혼자 들어갔어요. 우리 식구는 오데로 간 줄도 모르고…. 동네 사람이 많아 논께. 또 밤이제. 고마 들어가라 카는 대로 들어갔는데, 이튿날 아침에 보니 형님도 계시고…. 
  큰 형님은 인자 고때 나이가 젊응께네 큰 형님은 빼 갔어요. 그 안(교실)에 들어가서, 형님 나가시는 걸 보고 알았거든요. 젊은 사람은, 좀 빠리빠리한 사람은 전부 다 빼 가지고 나갔어요. 뒤에 알고 보니까 그 사람들을 왜 빼갔냐면 일 시키려고…. 알고 보니께 사람 죽여가지고 불태울라고 나무도 짊어지고 가고, 이랬단 말을 들었습니다. 한 사람은 우리 부락 사람인데, 살아 나왔습니다. 도랑가로 올라가다가 지게를 짊어지고 아래로 내려왔는 기라. 지게를 진 게 변명 대기(하기)가 좋아 그랬다 카는 기라요. 그래 인자 군인을 만나가지고 ‘너, 와 이래 내려오냐’ 카는데 그래 인자 ‘오데 심부름을 시켜서 심부름 간다고….’ 뭐 지러 간다고. 그래가지고 자기 식구들은 싹 다 희생돼 가지고 그분 혼자만 지금까지 살아계십니다. 
  저도 아버님만 손들고 안 나왔으면 뭐 희생됐지요. 난 그때 입학해서 열 살 먹었어요. 열 살 먹을 때 입학했어요. 2학년 올라가려하다 그리 됐거든요. 아이고 참, 선생님이 귀여워하고 그래 쌌었는데, 형편상 그리 됐습니다. 그때 애들이 많이 죽었지요. 우리 (학교) 선배들도 있고 후배들도 있고. 그때만 해도 어린애를 많이 안 낳았습니까? 생기는 대로 다 낳았거든요. 그러니까 한정도 없는 기라요. 집집마다 보통 대여섯은 됐얼 거거든요. 우리 동네는 일곱 집인가 완전히 문닫아버렸어요. 한 사람만 산 집이 두 집 있어요. 권도술 씨라 카는 분하고, 또 다른 한 분 있고요.
  그래 얘기 들은 바로는 이런 말을 들었어요. 그 구덩이에 인자 사람 희생시킬 때, 한 사람은(군인은) 눈을 지그시 감고 외면을 하고, 총을 쏘는 사람이 있고…. 그래 인자 외면을 하는 사람은 대장한테 몬 이겨가지고, 눌려가지고…. 그런 얘기도 들었습니다. 사람이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 어린 거…. 

  학교 더 이상 다니지도 못해
  그라고 나서 인자 학교는 다니지도 몬했습니다. 왜 몬 다녔나면, 어머니가 중풍에 걸려가지고, 지금 세월 같으면 안 그랬을 긴데, 밥 해줄 사람이 없는 기라. 인자 형님이 희생돼 삐리고 나니까, 형수가 그때 딸 하나 낳았었고, 또 유복자 하나 낳아가지고, 그게 머슴사(아들)인데, 고마 잃어버렸어요. 잃어버리고 나서 큰 형수는 고마 세상을 등졌다 아입니까? 형수가 가고 나니 밥 해줄 사람이 있습니까? 그래서 아버님이 도저히 안된다. 학교를 안 가도 밥은 먹어야 안삽니까? 고마 그걸로 (학교를) 종결지었습니다. 한글은 뭐 조금밖에 모릅니다.

  그때 혼자 숨어 있다가 내려갈 때 ‘내려가면 죽는다’ 이런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지요.
  내려가면 죽을 기라 하는 생각은 있었지요. 내려가다가 오데 마 누구랑 논두렁 밑에 숨어 있다가 어디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요. 혼자 있는 걸 몬 견뎌 따라갔지요. 조금만 더 컸으면 다른 데 갔을지 모르겠는데, 그때만 해도 나이 여남은 살 먹으면 참 아주 어린 아(아이) 아입니까? 
  집에서 가만히 누워서 잠 안 올 때 생각하면 그게(그때 일이) 그득한데 이렇게 갑작스레 얘기를 하다 보니까 빠지는 게 많습니다. 그래도 기억력은 있거든요. 그러니까 얘기하지 기억력 없으면 얘기 못 합니다. 내 딴에는 탁 면도날 같은 기라. 지금 이야기한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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