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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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3
  • 한들신문
  • 승인 2023.08.1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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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소설가)

고통 때문에 어두운 현실 속에서 서로를 껴안고 살아가는 고달픈 사람들이 그 힘겨운 삶을 건너오면서 제 몸을 나누어 밥을 이루어 냅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저 또한 저를 내주어 아름다운 밥상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저 역시 따뜻한 밥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저는 여전히 꼬들꼬들 아상(我相)으로 뭉쳐서 밥이 되지 못한 쌀알로 굴러다니고 있는 건 아닌지...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아내가 쌀을 안친다
천 년 전 어머니가 안치신 쌀
오늘 저녁 하얀 밥이 된다
아이들은 아직 밥에 관심이 없고
아내는 새벽부터 쌀을 찾는다
(중략)
그래도 밥이다, 밥.
밥을 피하지 말자
정면으로 직방으로 당당히 밥과 싸우자
피아노가 그림이 컴퓨터가
문학이 프로야구가 수능점수가
결국 밥이다 밥으로 집을 짓고
자동차를 사고 밥 타고 음악회 간다
아, 유통구조가 너무 복잡한
오늘 밤 뜨거운 밥.  

-강서일의 ‘밥’에서 (출처-강서일, ‘밥’, [사막을 추억함], 문학아카데미, 2000. 7.)

  천 년 전 아직 어둠이 깊은 새벽에,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정성스럽게 밥을 마련했던 일처럼, 밥은 누군가의 사랑으로 인해 익어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졸리는 눈으로 쌀을 찾아 솥에 밥을 안치는 그 밥상의 뜻을 알지 못했던 겁니다. 
  나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 밥이, 자기의 어머니가 천 년 전의 어머니가 대지의 어머니가 가이아(Gaea) (가이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신. 고대 그리스인이 제우스 숭배를 시작하기 이전부터 모신 모신(母神)이다) 가 생명을 다해 만들어 낸 값진 것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쌀을 안치는 손끝에서 묻어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기에 현대사회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기계화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밥 말고도 생각할 번잡한 것들이 너무 많이 늘려있습니다. 정작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허접스러운 것들에 둘러싸여 사는 건 아닌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먹고 사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저의 어머니는 식사 시간만 되면 텃밭으로 나가서 쑥이면 쑥, 상추면 상추, 근대면 근대, 씀바귀면 씀바귀, 밭에 있는 그대로 뜯어다가 씻어서 때론 삶고 때론 날것 그대로 드시곤 합니다. 그것만의 향취를 즐기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식사의 간편함과 자유로움 속에서, 늘 해 오던 방식대로 뭔가 생물 하나를 뜯어 날것 그대로 드시다가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습니다. 그다음 날 생각해 보니, 그게 자리공 뿌리였던 것 같았다 하시더군요. 자리공은 독성이 있는 것인데, 그것을 날것 그대로 먹었으니 성할 리가 없었지요. 
  밥은 함부로 먹어서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밥은 사람의 목숨을 이어주고 삶을 완성하는 바탕이기도 하지만, 그 밥상에서 무엇이 사람을 살리는 것인지 선별하는 안목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도 고단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저의 생명을 더욱 견고하게 다듬기 위해 밥을 끓였습니다. 상추 하나와 된장, 그리고 붉은빛이 보랏빛으로 물들어 가다 마침내 어둠 속으로 내려앉는 저녁놀의 변화를 최고의 찬으로 삼아 밥상을 차렸습니다. 천천히 오래 밥알을 씹으면서 밥 스스로 만들어 내는 단맛을 즐기며 밥을 먹고 있습니다. 굳이 제 입을 속이지 않아도 상추는 풋풋한 계절의 맛을 느끼게 하고 하늘은 번잡한 풍경들을 어둠 속으로 거두어들이며 저의 배 속을 평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지금은 혼자서 이렇게 밥상을 마주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저도 저의 밥상에 많은 사람을 초대해 함께 나누는 넉넉함을 누릴 수 있길 바랍니다.

  저의 숟가락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공양에 대한 게송 읊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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