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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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2
  • 한들신문
  • 승인 2023.07.2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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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소설가)

그 어떤 형태로든 먹는 일을 통해서 삶의 깊은 뜻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밥을 오래 씹다 보면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밥 먹는 일이 때론 무언가 삶에 대해서 혹은 자연에 대해서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되기도 합니다.

  시간이 날 때 저는 어머니의 집에 들러 어머니가 직접 가꾼 채마밭에서 있는 대로 뜯어와 국을 끓이기도 하고 데쳐서 먹기도 하고 아니면 아예 날것 그대로 된장에 찍어 먹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생명체는 다 그 나름의 빛깔과 향을 가지고 있음을, 미각과 시각을 통해 아니 몸 전체로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향과 색채를 음미하는 즐거움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먹기 위해서 미각이니 시각이니 하는, 원초적인 감각을 위한다는 것이 마치 호사스러운 작자들의 속된 유희처럼 여긴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 손으로 밥을 해 먹으면서 밥은 어머니였음을 깨닫기도 합니다. 촉촉하고 따뜻하고 평온한 밥... 밥은 차갑고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지치고 힘들 때 우리는 밥 한 그릇으로 새로운 힘을 얻고 또다시 메마른 삶의 현장을 향해 나서게 됩니다. 이제는 밥을 보면서 어머니의 자궁 같은 생명력을 생각합니다.

어느 날 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1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밥상을 차리고 계신다. 10년 전보다 20년은 더 젊어진 어머니는 콩나물 무치던 손으로 이제는 늙어버린 내 손을 밥상 앞으로 잡아끈다. 왜 이렇게 늦은 거냐, 밖에서 또 놀다 온 거냐? 젊은 어머니의 잔소리를 참아내며 늙은 내가 밥을 먹는다 어머닌 참, 내가 아직도 어린애인 줄 아세요? 그럴 때마다 이놈 자식이, 어머니의 싱싱한 손이 낡은, 내 엉덩이를 후려친다. 너는 커서 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냐? 어머니, 난 이미 어머니만큼 살았고, 인생의 절반을 시인으로 살았으면 됐지, 뭐가 또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도 이놈이, 밥 흘리지 말랬더니, 그거 다 저승 가서 먹어야 해! 어느 날부턴가 다 낡은, 나에게 싱싱한 어머니는 죽지도 않는다. (하략)

- 이용한의 이상한 밥상

출처-이용한, ‘이상한 밥상’, [안녕, 후두둑 씨], 실천문학사, 2006. 5.

 

  이용한의 시, ‘이상한 밥상속에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기억 속의 젊은 어머니가 달그락달그락 밥상을 차리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낸 어머니는, 혹시라도 자식이 밥을 제대로 못 먹고 살까 봐 보자마자 손을 이끌고 밥상 앞에 앉힙니다. 그리고 놀지만 말고 밥 좀 먹고 살라고 잔소리합니다. 이제 그때의 어머니 나이를 훌쩍 넘겨버린 늙어버린 시인은, 밥상 앞에 앉아서 젊은 어머니의 환상을 만납니다. 아직도 나를 위해 밥상을 물리지 못하고 기다리는 어머니의 사랑을 만납니다. 어머니는 죽지 않고 밥상과 함께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밥상뿐 아니라 내 몸의 전부가 내 삶의 전부가 어머니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저의 아들에게 제대로 된 밥을 해 먹인 적이 없는 참으로 부족한 어머니였습니다. 먼 훗날 나의 아들이 밥을 먹으며 어머니의 따스함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한다는 나의 아들에게조차 제대로 된 밥상을 차려준 적 없는 어머니였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벽에 너무 어두워

밥솥을 열어 봅니다

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

으스라져라 껴안고 있습니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중략)

그런 사랑 무르익고 있습니다

- 김승희의 새벽밥

출처-김승희, ‘새벽밥’, [냄비는 둥둥], 창비, 2006. 7.

 

  지금 제가 산다는 건 제가 밥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밥은 제 몸을 버려 다음 생명에게 사랑으로 건네주는 아름다운 일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밥상에서 하나의 별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온기가 가득한 밥 한 그릇의 생을 이루어 낸 하얀 별들이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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