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우먼 콤플렉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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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우먼 콤플렉스 2
  • 한들신문
  • 승인 2023.06.2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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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소설가)
▲삽화 : 김녹촌
▲삽화 : 김녹촌

한때 나는 직업여성으로서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며 주어진 업무를 감당했다. 대입 최전선인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로 수업 시수도 많고 교재 연구할 일도 많았다. 그리고 십 년 넘게 아는 것들을 쏟아붓고 나니까, 나 자신이 너무 가난해지는 것 같아서 직장 생활 중에 대학원 공부도 했다. 그야말로 ‘차 한 잔의 여유’조차 생각할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아들의 어머니로서, 아들을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다. 그러는 내내 내게 맡겨진 역할들을 철저하고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는 어떤 것에서도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소위‘슈퍼우먼 증후군’이었던 것이다. 
  이 이름을 붙인 M.슈비츠에 의하면, 여성이 아내·어머니·직업인·이웃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려고 모든 것을 떠맡은 결과로, 그 완벽함의 이면에 현기증·호흡곤란·허탈감 같은 여러 가지 증세를 갖는다고 한다. 워킹맘들이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책임감에 압도돼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는데, 이가 지나칠 경우 ‘슈퍼우먼 콤플렉스’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슈퍼우먼 콤플렉스는 그 뿌리가 깊다. 조선 후기에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이 확산되면서, 여성은 집안 살림을 이끄는 주체이자 도덕성을 겸비한 인격체이어야 했다. 문제는 감당해야 할 몫은 커졌는데, 여성이 갖춰야 할 도덕성과 그것에 대한 규율, 사회적 시선은 관대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7]은 콤플렉스를 통해 현재 한국 여성의 삶을 들여다본다. 여성은 경제적 주체로서 그 위상이 한껏 높아졌음에도 여전히 모성 이데올로기 앞에서 자유롭지 못해, 직장과 가정생활에서 남성보다 더 많은 일과 과제를 수행한다. 슈퍼우먼 콤플렉스는 현대사회에 오면서 더욱 정교하게 얽혀 복잡해진 것이다. 
  워킹맘이었던 나 역시 늘 목마르고 초조했다. 무언가 더 많이 더 잘 성취하고자 하는 갈증이 위장을 긁어내고 뼈를 깎아내는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렸다. 시간은 내 곁을 바삐 지나갔고, 결국에는 내 몸이 그 삶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쓰러지고 말았다. 학교에는 휴직계를 냈다. 그러면서 모든 상황이 바뀌어졌다. 늘 나의 돌봄 속에 있다고 생각했던 어린 아들은 내 손이 가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의 일을 찾아서 잘해 냈다. 심지어는 아픈 엄마의 변기를 비우며 간병까지 했다. 아들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나 없이도 조화롭게 잘 흘러가고 있었다.
  맨 처음에는 본의 아니게 시작된 안식년이었지만 그 시간은 나에게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정신없이 바삐 달려가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그 흐름만큼 마음의 여유도 갖게 되었다. 그 후 직장 생활은 다시 시작되었고, 옛날과 다를 바 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이어졌다.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 또한 줄어들진 않았다. 모든 상황이 예전과 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그러나 분명하게 달라진 게 있었다. 그것은, 우선 내가 먼저 제대로 서야 세상도 바로 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들을 철저하게 완성시키겠다는 욕심과 강박관념에서 벗어남이었다. 
  인간이 결코 슈퍼맨이 될 수 없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완벽한 곳이 아니다. 당시에는 옳다고 생각하고 내린 판단이나 행동이 때로는 후회를 가져오기도 하며 꼭 그렇게 해야 했던 것이 아닐 때도 많다. 내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절망 앞에 서 보고 나서야, 나를 뛰어넘는 더 큰 힘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진실을 깨달은 것이다. 물론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얻어 낸 선물이지만 말이다. 

“국모는 개뿔, 중전은 극한직업이다.”
엄마의 위대한 사랑을 보여준 tvN 토일드라마 <슈룹>의 마지막 대사이다. 왕자들을 챙기느라 정신없이 달렸던 중전 임화령이, 마지막까지도 막내 일영대군이 연과 함께 날겠다며 지붕 위에 올라가자, 이를 해결하러 뛰어가는 장면에서 나온 대사다. 
  극한직업인 어머니로서 한 여성으로서, ‘슈룹’은 나 자신을 위해 제일 먼저 펼쳐야 할 것이었다.                                     


<참고자료>
*여성을 위한 모임,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7], 휴머니스트, 2015.10. 외 여러 신문, 잡지 기사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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