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을 아십니까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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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을 아십니까_1
  • 한들신문
  • 승인 2023.04.2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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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소설가)

 

 

▲영화 포스터(출처 : 네이버)
▲영화 포스터(출처 : 네이버)

오늘 아침에도 세상에는 햇볕이 가득 밀려와 있다.
오래전 영화 <밀양>을 개봉하던 날, 나는 혼자 영화를 보러갔다. 같이 가자고 몇몇 친구들에게 추파를 던졌지만 다들 사느라 바쁜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지방의 소극장이라, 관람객은 채 열 명도 안됐다. 나는 어둠 속에 앉아 영화를 기다렸다. 그리고 영화를 핑계 삼아 실컷 울겠노라고 마음먹었다. 이청준의 소설 <벌레 이야기>를 원작으로 했고 이창동 감독이 만든 영화로, 미리 주워들은 정보가 많았기 때문에 울 이유는 충분했다. 그리고 사실 그즈음의 내가 언제 마음 놓고 울어본 적이 있었던가? 그러나 정작 영화가 시작되자 울음이 나오질 않았다. 아니면 영화에 완전히 몰입하느라 나의 감정이 개입될 여지가 없었던 건지 그건 알 수가 없다.

  신애(전도연 분)는 남편을 잃고 남편의 고향, 소도시 밀양으로 온다. 밀양(密陽-Secret Sunshine)). 은밀한 햇볕. 신애는 새로운 삶의 햇살을 찾아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객기 어린 허영 때문에 아들이 유괴되고, 마침내 그 아들은 잔혹하게 살해된다. 남편의 죽음에 이은, 자식의 죽음 앞에서 신애는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자신을 향해 끝없이 찾아드는 불행과 슬픔 앞에서 그녀는 몸부림친다. 고통의 의미를 찾아 헤맨다. 그리고 마침내 종교를 통해 그 해답을 찾는 듯했다. 그러나 하느님의 햇빛은 신애만 비추는 게 아니었다. 신은 참으로 공평하시어,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고 계시었다. 아들을 죽인 원수에게도 햇볕은 따뜻하게 내리쬐고, 그 신의 햇살 아래 새 삶을 찾은 살인자는 면회실에서 환한 얼굴로 신애를 맞이한다. 이런 역설적인 상황 앞에서 신애는 다시 무너져 내리고 만다. 

  영화는 끝이 났고 나는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명치끝이 미어지듯 아파지더니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길가 구석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다. 정말 징그럽게도 징한 삶의 고통이 내 가슴을 후벼 파 냈던 것이다. 
인간 존재가 가지는 근원적인 고통이, 신에게 매달린다고 해서 비켜갈 수 있을까? 신이 주는 위로는 어느 순간 달콤하지만 그러나 아픔은 그대로 남아, 그저 그것을 견뎌내야 할 뿐이었다. 그 사람의 고통 깊은 곳에 천착하지 않는, 피상적인 종교적 위안은 신애처럼 더 짙은 배신감으로 빠지게 만들 수 있었다. 인간은 진정 고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인가? 그 징그럽게 끈질긴 삶의 비애와 처절한 고독감, 그리고 절망감이 나를 휘감고 몰려와 견딜 수가 없던 것이었다.

  <밀양>은 ‘고통’을 영화라는 매체에 담아온 이창동 감독이 자신에게 혹은 자신의 영화에 던지는 질문이다. 고통받는 주인공을 드러내면서, 그는 먼저 자신에게 묻는다. 고통을 재현한다는 게 가능할까, 혹은 정당할까. 이 질문을 경유해 그는 다시 우리에게 묻는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은 가능할까.

  신애 곁에는 항상 카센터 사장인 종찬(송강호 분)이 있다. 그는 병원에서 잠든 신애의 머리카락 냄새를 맡으며 그 여자와 함께 있고 싶어 한다. 살 집을 구해주고 피아노 학원을 봐주고, 그녀를 따라 땅을 보러 다닌다. 떠밀어내도 멈추지 않고 신애의 뒤를 따라다니는 촌스러운 애정의 소유자이다. 신애는 한없이 고통스러운데 종찬은 옆에서 툭툭 한마디만 던져도 우습다. 어느 날 신애는 아들을 잃고 죽을 것 같이 괴로워서, 그 아픔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을까 싶어 종찬을 찾아간다. 그러나 남자는 혼자서 노래방 기기를 틀어놓고 제 흥에 겨워 춤추며 노래하고 있다. 밖에서는 그가 그렇게도 함께하고 싶어 하던 여자가, 어둠 속에서 애절하게 그를 찾고 있는데 말이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2000년 이후 개봉한 모든 한국영화 중에 최고의 작품으로 <밀양>을 선택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신애가 아들의 유괴 소식을 들은 뒤 종찬에게 달려가지만, 가게 안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그를 차마 부르지 못하고 돌아서가다 주저앉아 우는 장면을 꼽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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