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을 아십니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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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을 아십니까 3
  • 한들신문
  • 승인 2023.05.2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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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소설가)
▲삽화 : 박혜원
▲삽화 : 박혜원

신애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 때문에도 고통스럽지만, 그 불행의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괴롭다. 그녀는 고통의 원인을 찾아 헤매다 종교를 가진다. 그 후 마음의 평화를 얻고 행복하다고 떠들고 다녔지만, 실상은 고통을 미처 극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녀가 최후로 선택한 것이 유괴범을 용서하는 것이었는데, 자기가 용서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며 편안한 얼굴로 등장한 유괴범의 모습에 그녀의 허위는 또다시 무너지고 만다. 신애의 고통은 종교를 얻기 전보다 더 심해져, 환시, 환청, 환촉 등에 시달리는 이상행동을 이어간다. 그러면서 하늘 위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믿는 신과 대립한다. 그러다 결국 손목을 칼로 긋는 자해를 한다. 피를 흘리며 새벽 거리를 뛰쳐나간 신애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토하듯 말한다. 
  “살려주세요.”
  ‘햇빛도 비치지 않는 그늘진 곳으로만 침울하게 돌아다니다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이르면 도와달라고 애걸이나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대한성서공회, 표준새번역 개정판 [욥기] 30장 28절)던 것이다.
  병원에서 입원 치료가 끝난 신애는 종찬과 함께 살던 동네로 돌아온다. 길어진 머리를 정리하러 미용실에 들른 신애와 종찬은, 그곳에서 유괴범의 딸과 조우한다. 신애는 머리를 자르다 말고 미용실을 뛰쳐나온다. 그리고는 하늘을 매섭게 노려보다 자기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 스스로 머리를 자르려 하는데 어느새 종찬이 집으로 따라와 그녀가 머리를 자를 수 있게 거울을 들어준다. 카메라는 두 사람이 있는 마당 한 구석, 지저분하고 더러운 땅을 비추는 햇볕을 오랫동안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의 이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었다. 
  온갖 아픔과 절망의 끝을 돌아서 온 을씨년스러운 집, 그 스산한 마당에서 신애는 거울 앞에 앉아있다. 살인범의 딸이 자르다 만 머리카락을, 제 손으로 뭉텅뭉텅 잘라내는 신애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다. 그런데 삶은 바로 그런 절연의 순간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 같다.
잘라낸 머리카락이 바람에 굴러간다. 그 옆에서는 낙엽이 뒹굴고 흙먼지도 날린다. 함부로 내던져진 시궁창 주변에 지저분하게 널브러진 잡동사니들... 
  인생이 이런 거라고. 그저 이리저리 뒤섞여 사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도 그렇고 안 해도 그렇고, 내 타입 남의 타입 가릴 것 없이, 내 취향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냥 얽혀 살아가는 것이라고... 용서하지 못하고, 그래서 구원받지 못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지속되고 그 아픔을 온몸으로 감당해 내야 한다고... 그러다 보면 지금은 숨조차 쉴 수 없는 고통이지만, 그 고통도 언젠가는 수챗구멍을 통해 흘러가 버릴 것이라고. 그리고 혹 아픔이 좀 고여 있다 해도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할 수 있는 것도 없다는 것, 그저 감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임을 감독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나 바람이 스산하게 날리는 그 뜰에 신애 혼자만 있지는 않았다. 어깨가 널찍한 남자, 항상 주변을 맴돌며 신애를 지켜보던 종찬이, 그가 거울을 들고 서 있어 그리 삭막하진 않았다. 그리고 그곳을 비추는 햇볕이 그나마 따뜻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신이 주는 축복일 것이다.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신애가 발을 딛고 앉아있는 지저분한 땅바닥에 비치는 햇볕. 그것은 고해로 일컬어지는 현실을 꾸역꾸역 살아내는 인간의, 생에 대한 끈질긴 욕구이거나, 아니면 개인의 의지나 의욕과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부조리한 삶, 그 삶을 비추는 누군가의 시선일 것이다. 카메라는 정말 오래도록 집요하게, 그 햇볕, ‘밀양’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한참을 운 뒤에 다시 불을 켜고 천천히 내 집으로 향했다. 헤드라이트 불빛은 길 이곳저곳을 비추었다. 어둠에 갇혀 있던 돌멩이, 함부로 버려진 비닐 조각, 담벼락의 낙서와 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은 쓰레기통... 너저분한 생활의 흔적들이 불빛 속에 잠시 몸을 드러냈다가 사라지곤 했다. 
  영화<밀양>을 통해서, 내 삶의 뒤안길 이곳저곳에 복병처럼 묻혀있던 상처와 아픔이 ‘밀양’을 비추는 햇볕 아래 그 몸을 드러냈던 것일까? 그래서 나로 하여금 그렇게 오열하게 했던 것일까... 

  나는 더욱 힘차게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불빛이 길 위에 길게 내리비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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