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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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1
  • 한들신문
  • 승인 2023.07.1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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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소설가)

 

▲삽화 : 김녹촌
▲삽화 : 김녹촌

어제 저는, 비가 내리고 어둠이 조금씩 밀려드는 창밖을 내다보며 혼자서 밥을 먹었습니다.

전에는 혼자 밥을 해서 먹는 일이 참으로 힘들고 부담스러워서, 아니 왠지 나 하나를 위해 밥을 지어 먹는 일이 치졸하고 궁상스러운 것 같아서, 이 집 저 집을 찾아다니며 먹곤 했습니다. 남의 집을 기웃거리며 구걸하듯 밥을 먹었던 것이지요. 밥하는 일이 나만 부담스러운 게 아닌데, 그 무게를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가시키면서 빌어먹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때는 밥하는 일이 너무 싫었습니다. 밥 때문에 버리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웬일인지 맛있는 음식도 제 손만 가면 그 맛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런 저를 두고 어떤 이는, 제가 전생에 궁중 요리사여서 끔찍하게 요리하기 싫은 거라고... 온갖 각축전을 벌이며 살아온 궁중에서의 징그러운 이력 때문에 음식 근처에는 가까이하기조차 싫어진 거라고, 너그럽게 이해해 주기도 하더군요. 저도 그 말에 맞장구를 치며 저의 게으름을 스스로 합리화시켰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저는 저 자신을 위해 제 스스로 밥을 해 먹기로 작정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 밥 제가 해 먹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 저에게는 그 밥이라는 것이 감당하지 못하는 숙제처럼 늘 마음 한 곳을 무겁게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는 일입니다. 어찌 됐건,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짐처럼 안고 있던 밥의 문제를, 어느 날 돈오돈수처럼 풀어냈습니다. 그런 마음을 먹는 일에는 법정 스님의 책도 일익을 감당했습니다. 자기 먹는 일로 남에게 짐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뭐 그런 지극히 당연한 내용이었는데, 그날따라 촌철살인처럼 저의 가슴을 치고 들어왔습니다. 밥 먹는 일은 삶을 지탱하는 소중하고도 아름다운 일 중의 하나이고, 그 일을 위해 시간을 바치는 건 그렇게 아까운 게 아니라 오히려 삶을 벼리는 바탕임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밥은 사람의 삶을 싱싱하게 만드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또한 밥이라는 게, 그냥 먹으면 되는 것이지 무슨 대단한 반찬이 곁들여져야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정약용이 상추로 밥을 싸 먹으니까 구경하던 사람이 상추로 싸 먹는 것과 김치로 담가 먹는 것은 차이가 있는 겁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니까 정약용은 그건 자기 입을 속여 먹는 겁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자기 입을 속인다는 것은, 김치 같은 반찬이 없는, 간소한 차림의 밥도 맛있다고 생각하며 먹는 것으로, 먹고 사는 일에 사치를 부리거나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인 게지요. ‘입을 속이는 소박한 밥상에 대한 정약용의 글을 읽은 이후부터 저는 반찬이나 국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야생초 편지]를 쓴 황대권 역시 언젠가 어느 강연에서, 야생초 하나라도 있으면 그걸 찬 삼아 먹고 없으면 없는 대로 먹는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저는 무릎을 치며 동조했습니다.

그래. 찬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먹으면 되지! 그러다 문득 마음이 내켜서 뭔가를 만들고 싶으면 만들어 먹고 그것조차 싫으면 말고, 그냥 밥을 삶아서 먹으면 족한 것이지, 밥을 차려 먹는 일이 뭐 별스런 문제이겠는가

이렇게 작정하고 났더니 드디어 밥에 대한 생각의 무게가 싹 덜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밥을 해 먹기 시작했습니다. 들판에 민들레 싹이 올라오면 민들레 싹을 감자가 있으면 감자를, 특별히 고기라도 생기면 굽든 삶든, 있는 그대로 상에 올려서 먹게 되었습니다. 때론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내다보면서 조용히 밀려드는 어둠의 빛깔을 찬 삼아 먹기도 했습니다.

그 후부터는 밥을 해서 먹고사는 일이 내 마음의 무거운 짐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반복되는 하나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제 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 정말 밥이 되어, 제 삶을 버텨주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저는 솜씨가 없어서 제가 한 밥으로 함께 나눠 먹는 일은 잘하지 못합니다만,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으로 생각하며 감사하면서, 밥값을 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은퇴한 후로는, 시간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맘껏 여유를 부리며 밥을 먹는 자유로움도 얻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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