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 이야기 15]김봉순 여사 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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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학교 이야기 15]김봉순 여사 관찰기
  • 한들신문
  • 승인 2021.04.1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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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초 교감 신인영

봄이다. 보라색 무스카리는 돌 둘레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피어 있다. 돌절구 둘레에는 키 작은 수선화가, 본관 앞에는 키 큰 수선화가 피어 있다. 작은 돌멩이로 울타리를 만든 화단 안 화단에는 노란색, 보라색 야생화가 피어 있다. 지난주, 숲 놀이터 가는 길 옆에 김 여사님이 옮겨 심은 나리꽃은 뿌리를 내린 듯 초록색이 짙고, 김 여사님이 가져 온 백일홍, 해바라기, 나팔꽃, 금잔화, 봉숭아 꽃씨는 교무실에 있다.

지금부터 늦가을까지 우리 학교 화단에는 갖가지 꽃이 핀다. 낮달맞이, 마가렛, 매발톱, 붓꽃, 불두화, 수국, 수선화, 영산홍, 오공국화, 인디언국화, 자주달개비, 하늘말나리, 명자나무, 빨강·분홍·노랑 장미, 개나리, 해당화, 백일홍, 바늘꽃, 안개꽃, 백합. 꽃이 있으면 좋겠다 싶은 곳에 때가 되면 꽃이 핀다. 옹벽 돌 틈 사이에 송엽국, 군데군데 꽃잔디와 채송화를 심은 게 번져 어느새 꽃밭이 되었다. 누가 그렇게 심었을까.

언제, 어디에 무슨 꽃이 피는지 아는 사람은 우리 학교에서 김봉순 여사님뿐이다. 해마다 꽃이 피는 걸 보고 더 좋은 자리에, 허전한 곳에 모종을 옮기고, 어디서든 예쁜 꽃을 보면 미리 씨를 받아두고.... 김 여사님은 미리 준비한다. 우리 학교 화단은 김봉순 여사의 정원이다. 15년 동안 가꾸어 온.

오늘 아침, 김 여사님이 검정색 비닐봉지를 들고 오는데 모종이 보이고, 그 중 한 포기를 내밀었다.

이건 뿌리가 떨어졌는데, 물에 꽂아두면 돼요.”

이름이 뭡니까?”

비비추예요. 우리 집에 많이 번져서 화단에 심으려고 뽑아왔어요.”

이렇게 꽃 식구가 늘어간다. 김 여사님은 심고, 옮기고, 가꾸고, 우리는 그저 수선화가 피었어요.”, “정말 예뻐요.”, “어쩜 이렇게 잘 가꾸세요?”라며 즐긴다. 김 여사님은 내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꽃 보면 참 좋잖아요.”라고 한다. 창 밖에 호미 든 김 여사님이 보이면, ‘또 뭘 심으시나?’ 한다.

꽃은 화단에 피어 있고, 모두 그저 한 번 바라보고 무심하게 지나친다. 아이도, 어른도 꽃을 더 자세히 보고, 이름이라도 되뇌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새로운 꽃이 피면 급식 받으려고 줄 서는 곳에 꽂아둔다. 꽃 이름표도 붙여서.

우리 학교에 이런 꽃도 있어요?”, “, 예쁘다.”, “. . .

김 여사님은 15년째 우리 학교에서 통학차량보호탑승,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다. 학교버스 등교 운행이 끝나면 청소원 일을 한다. 조끼 앞치마 입고 분홍색 고무장갑 끼고, 파란색 걸레가 담긴 갈색 통을 든 김 여사님의 모습을 가장 자주 본다. 마스크 위로 웃는 얼굴이 보이고, 재바른 몸놀림이 느껴진다. 경쾌한 발걸음, 지저분한 곳은 절대 가만두지 못하는 깔끔함과 부지런함. 그 덕분에 우리 학교의 복도, 화장실, 현관, 창문은 항상 깨끗하다. 1층부터 3층까지 쓸고, 닦고, 지우고, 정리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고. 그 누구도 어디를 청소해 달라거나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말하기 전에 이미 다 되어 있다.

작년, 3층 올라가는 계단참에 보드게임 도구가 섞이고, 어지럽혀져 정리해야 했다. 정리함은 손봤는데, 게임도구는 정리할 시간이 없어 미뤄두었다가 어느 날 마음먹고 올라갔다. 김 여사님이 놀이도구에 쌓인 먼지를 닦으며 정리하고 있었다.

제가 하려고 했는데요.”

아무나 하면 되지요.” 같이 정리하니, 금방 끝났다. 내가 하려던 것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작년에 6학년은 학교 주변에서 주운 도토리로 묵을 만들었다. 그 때 김 여사님은 마을 선생님이었다. 도토리를 물에 담가 우려내고, 가루 내고, 끓이고 식혀서 묵 만드는 과정을 지도하고 시범 보였다. 옆에서 지도하고 시범 보이는 것만큼 좋은 자료가 있을까. 시범을 보고, 아이들이 만든 도토리묵은 전교생이 나눠 먹고, 집에도 조금씩 가져갔단다.

오후, 학교버스 출발시간이 가까워지면 김 여사님은 바빠진다.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청소원에서 통학차량보호탑승자가 된다. 올해 학교버스는 아침에 읍에서 출발하고, 오후에는 읍에서 운행을 마친다. 그래서 김 여사님의 출퇴근 시간은 더 길어졌다. 하지만 항상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가신다.

먼저 나갑니다. 내일 봬요.” (2021.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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