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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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가족이다
  • 한들신문
  • 승인 2023.05.2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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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소비자주권행동

실로 몇 년만에 온몸으로 맞이하는 계절의 여왕 5월의 봄, 그 이름답다. 
코로나가 더 이상 공포가 되지 않는 이 시점에 가정의 달 5월은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새기는 프로그램과 행사가 많다. 그런데 이미 우리 사회에서 공동체를 구성하는 최소단위인 가족에 대한 개념이 변화되고 있다. 즉 가족을 법적인 혼인이나 혈연관계로 보는 인식은 점점 줄어들고,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거나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아빠자녀로 구성되는 가족이 ‘정상’이라는 구시대적인 생각은 3가구 중 한가구가 1인가구인 현시점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 되어버렸다. 정책이나 제도의 변화 이전에 이미 내 주변 이웃과 구성원의 구체적인 변화로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여성가족부 통계 자료에 의하면 이혼, 재혼가정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는 85.2%, 결혼하지 않고 동거를 하는 것은 67%,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은 48.3%,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 80.9%, 부부가 자녀를 가지지 않는 것은 67.1%, 미성년이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에 대해 29.5% 정도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가족 해체와 다양성의 증가로 가족의 고유한 기능이 퇴색된다는 데에 있다. 물론 가족중심주의가 고정된 성역할, 힘의 불균형,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 친밀하고 밀폐된 관계에서 발생하는 가정폭력으로 이어지는 문제점들을 지닌 것은 사실이다. 가족의 기능이 역기능적일 때, 특히 가정 내 가장 취약한 대상인 아동은 애정, 훈육 등에 대한 잘못된 통념으로 일어나는 폭력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에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아동에 대한 체벌을 너무 개인적으로 여기고 그 부모가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묵인하면서 집안일이라고 사소하게 여겨 결과적으로 마을 전체가 학대에 가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의 기능이 감당해야 하는 중요성이 매우 크다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보육시설, 학교와 지역사회, 국가가 가족의 역할을 대신하거나 보조하지만, 말 그대로 보조일 뿐이다. 개인의 일생에서, 가족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얻지 못하는 안정감과 소속감을 제공해주고, 규칙과 규범, 인성을 배우는 1차적 교육기관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렇다고 가족이 더 많은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얻는 평화는 착취라고 했다.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의 저자 정아은 씨는 가사노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사노동을 노동이 아닌 여성의 ‘천성’으로 만들면 가사 노동을 하는 이에게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어지고, 자신을 위해 수많은 종류의 가사 노동을 하면서도 돈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존재를 곁에 둔 남성 노동자는, 그 존재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아무리 적은 임금을 받아도, 아무리 심한 인격적 모독을 받아도 회사를 그만두지 못한다. 그러니 가족이라는 제도는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얼마나 신박하고 기특한 존재인가!”
  얼마 전 국회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최저임금 적용을 하지 않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돼 논란이 일고 있다. 발의된 개정안은 “최저임금 적용을 없애면 월 100만원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인데 저출산 문제와 맞벌이 가족에 대한 대안으로 제안된 경위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과 대안은 오히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돌봄 노동을 저평가하는 인식도 문제이지만, 국내 여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더 취약한 위치에 있는 이주 여성 노동자를 착취하겠다는 발상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가족의 역할과 기능은 가벼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무겁지만 한 사람이 아니라 가족구성원이 함께, 한 가족만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맞잡아 들어 올리자. 들기 편하게 도구와 시스템을 사용하자. 너무 무거운데 혼자 버티다 결국 버리게 하거나, 무겁지 않다고 우기면서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가족이 건강한 공동체로서 제 기능을 다하도록 함께 하자.  
  가정의 달, 5월이다. 만날 수 있는 가족이 있어서, 가족과 같은 친구와 이웃 동료가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이 만남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요행이 아니라 그들과 차근차근 쌓은 역사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시간과 마음을 내서 같이 산책을 하고, 맛난 것을 먹고, 같이 아파하고 눈을 마주치는 사소함들이 쌓여 마음통장에 그득한 잔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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