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숨은 그림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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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숨은 그림 찾기
  • 한들신문
  • 승인 2023.08.1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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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인 백상하

올해도 여지 없이 이상 기후가 일상적인 기후가 되어 버렸다. 장마철에 비가 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와도 너무 많이 와 버렸다. 50여 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고 그 중 청주의 지하차도에선 10여 명이 안타까운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다행히 이곳 거창에서는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농사는 큰 피해가 온 것 같다. 내가 농사짓고 있는 사과의 경우 엽소 피해가 발생해 많은 나뭇잎이 말라 죽었다. 엽소현상은 나무가 물을 빨아들이지 못해 이파리가 말라버리는 현상으로 가뭄이 심하게 와도 발생하지만, 많은 비가 한꺼번에 내려도 똑같이 발생한다.

  땅에 물이 너무 많아도 나무는 물을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과 농사는 이파리 농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년을 위한 양분을 저장하고 사과를 키워내는 것은 오롯이 이파리의 광합성 능력에 달려 있다. 갈반현상도 빨리 시작된 것 같다. 갈반이란 이파리가 균에 침식당해 갈색으로 마르면서 낙엽과 해 사과를 키우지도, 익히지도 못하게 만든다. 그나마 사과는 기호 식품이니 안 먹어도 그만이다. 하지만 우리의 주식인 쌀은 다르다. 중부 지방의 경우 큰 면적의 논들이 침수되었고 쌀 수확량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쌀이 남아도니 걱정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는 쌀도 백 퍼센트 공급하지 못하는 쌀 부족 국가로 전락했다. 수입하는 것도 여의찮다. 우리나라만 농사를 망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북부 지역이 오랜 가뭄과 폭염으로 식량 생산이 줄어들 예정이라 중국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중국은 공산화 초기 식량 정책의 실패로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적이 있어 식량 수급을 공산당 제1의 관심사로 둘 정도로 식량 문제에 민감하다. 인구가 14억이나 되고 식량 공급이 원활치 않을 경우 공산당 지배 지지 기반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못지 않은 인구를 가지고 있는 인도도 마찬가지다. 이상 기후로 쌀 수확량이 급감해 수도인 델리에서의 쌀 소매가격이 15퍼센트 이상 상승했다고 한다. 인도와 중국의 식량이 모자랄 경우 시장에서의 곡물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를 것이고 상대적으로 재정이 빈약하면서 식량 자급이 안 되는 개발 도상국들이 큰 곤란을 겪을 것이다.

  밀의 주 생산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전으로 돌입했고 언제 끝날지 몰라 밀 생산량 급감은 불을 보듯 뻔하고 그나마 해상을 통해 수출하던 우크라이나 밀도 식량 수출용 선박 공격을 하지 않겠다던 러시아가 더 이상 협정을 연장하지 않고 공격을 천명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밀 수출은 많이 줄어들 예정이다. 쌀 곡창 지대였던 태국과 베트남도 이상 기후로 인해 쌀 생산량이 많이 줄어들었고 국제 곡물 가격 인상을 더 부채질할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현상들이 일상화될 것이고 부족해진 식량을 구하는 것이 더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식량 위기가 발생했을 때 OECD 국가 중 가장 많이 곤란을 겪을 나라는 일본과 한국이라는 국제 사회의 경고가 있었지만, 현 정부의 식량 안보 인식은 아주 천박해 보인다. 반도체와 자동차를 팔아 식량을 사 올 수도 있겠지만 전 세계 식량 생산량이 줄어들어 다른 나라에서 팔지 않겠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상 기후가 인류를 직접적으로 공격해서 큰 피해를 주기 전에 인류는 식량 생산 감소로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며 현재와 같은 농정을 지속할 경우 농부와 농지는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위기가 눈앞에 닥친 후에 시작하면 늦다. 없어진 농부와 농지를 회복하는 것은 공장에서 공산품을 만들어 내듯 뚝딱 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상 기후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숨은 그림을 미리 찾고 대비해야 큰 재앙을 피해 갈 수 있다. 부디 현 정부가 농촌의 현실을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여 주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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