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8일 ‘거창구치소’ 개청식이 열렸다. (▷관련 기사 : 2면)
법무부는 ‘12년 만의 결실, 거창구치소 개청식’이라는 제하의 보도자료를 통해 개청식 소식을 알렸고 참석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기념사를 통해 “개청이 특별히 감동적인 이유는, ‘거창 주민들께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보여주셨다’는 점 때문”이라며 개청식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12년 만의 결실’이라는 표현을 통해 법무부는 ‘거창구치소’ 건립의 지난한 과정을 에둘러 표현했다. 그러나 보도자료 어디에도 주민 사이의 갈등과 상처에 대한 언급만 있을 뿐 추진 과정에서 주민 사이의 갈등을 일으킨 행정기관인 법무부의 반성은 없다. ‘주민설명회 없이 가짜 서명을 받아 추진된 교도소 건립 추진’의 갈등 원인이 주무 부처인 법무부와는 무관한 ‘주민 사이의 문제’라고 틀을 지운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심부름꾼’으로서의 행정의 책임에 대한 망각, 그것이 12년 동안 주민 사이에 반목과 갈등을 불러온 근원임을 여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참여정부 때인 2007년, 공공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공갈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갈등관리 표준절차로서 「공공기관의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이 대통령령으로 제정되었다.
「공공기관의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은 ‘중앙행정기관’의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역할·책무 및 절차 등을 규정하고 중앙행정기관의 갈등 예방과 해결 능력을 향상시켜 사회통합에 이바지하고자 제정된 것이다. 이미 법령으로도 중앙행정기관에 갈등 예방의 책무를 지우고 있다. 그런데도, 법무부가 갈등 예방의 책무를 다하였는지 평가하는 일 없이 주민 사이의 서로 다른 이해 상충만을 언급하는 것은 행정의 무책임이며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다.
기념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2011년 거창 주민들께서 법무부의 자발적인 유치 건의를 하셨지만 2014년경부터 반대하시는 주민분들과 찬성하시는 주민분들의 의견 차이가 극심해졌고 결국 사업 진행이 중단됐다. 2019년 민주적 절차인 ‘주민투표’를 통해 거창구치소 개청 결론을 이끌어 냈고 반대하던 분들도 절차를 신뢰하고 그 결과를 존중했다.” 12년간의 갈등 속에 추진된 ‘거창구치소’ 건립 추진 주무 부처인 법무부의 장관으로서 반성이 빠진 기념사는 ‘민주주의 가치 구현’의 사례로 거창 주민을 치켜세우는 찬사마저도, ‘정치적 수사’로 읽힌다.
“‘문제해결 수단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민주적 절차에 대한 신뢰, 결과에 대한 존중, 그리고 상대를 배려하는 통합의 정신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여기, 거창 주민들께서는 그 어려운 걸 해내셨습니다.”
정치적 수사만 남고 행정의 반성이 빠진 기념사는 ‘반성 없는 행정’의 되풀이로 이어져 ‘12년 만의 결실’을 또 다른 지역의 주민에게 선사할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한다.
평론가 김민하는 현재의 정치를 ‘남 탓’으로 현상 유지하는 정치라고 평한다. ‘주민 탓’이 아닌 ‘잘못된 행정 탓’이 아니었는지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