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단상]새싹 농부의 씨름 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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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단상]새싹 농부의 씨름 한 판
  • 한들신문
  • 승인 2021.06.25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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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인 정애주


누가 나를 말렸어야 했다. 들리지도 않았겠지만 들을 수도 없었다. 실은 일말의 사명감, 거창한 소명감 같은 결심이었으니까. 믿거나 말거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시작하면서 나름 계획하고 또 공부하고 순서를 정하고 ‘밭일’에 대한 그림을 수도 없이 그렸다. 묵은땅을 뒤집는 작업은 마을 큰 백 선생님께서 도움을 주셨고 고사리 종근은 남원에서 구매하였다. 그 날짜를 맞추는데 여간 긴장되질 않았다. 일러주신바 로터리 하고는 다음 날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비를 피해서... 종근을 함께 심어주실 분들이 간절했다. 마을 부녀회장님께서 마을 성님 한 분과 함께 나서 주셨다. 드디어 결전의 날에 ‘선수’들과 함께 난, 고사리 종근을 다 심었다.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땅에 종근을 묻으며 나는 생명체와 흙의 마술을 기대하면서도 의심 반 믿음 반이었다. 싹이 나기까지는 절대 안심할 수 없는 기다림이 필요하니까. 다음은 땅의 보습을 위해 왕겨를 덮기로 했다. 한 포대(80L)를 주문해서 깔아보니 대략 80 포대 이상이 필요했다. 이장님께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왕겨를 받았다, 자그마치 5톤을! 사방으로 날려 주변 밭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받는 날 전량 고사리 밭을 덮기로 했고, 남편과 터키살이를 마치고 귀국하여 이웃이 된 고교 동창생 친구가 용역으로 자원해서 그 거대한 왕겨 산을 고사리 밭 땅으로 옮겨 덮었다. 미안했다. 내 뱃속에선 누가 나를 말렸어야 했다는 후회막급의 신음이 들렸다.
 고사리 밭은 밭의 반절, 나머지 반은 아스파라거스를 심기로 했다. 찾아보니 지피필렛이라는 발아를 돕는 압축 피트가 눈에 띄었다. 아스파라거스 종근은 너무 비싸서 씨앗을 구매하고 압축피트를 물에 불려 거기에 심기어 땅에 묻어 발아를 해 볼 심산이었다. 우선 로터리를 하고 퇴비를 깊이 묻어 넣었다. 이 일은 옆집 채 선생님께서 도와주셨다. 그리고 이랑을 만드는 일은 아우님 백 선생님과 이장님께서 함께 해 주셨다. 새싹 농부가 안쓰러우셨는지 온 마을 어른들이 모두 각각 큰 일을 다 해 주셨다. 내가 생각하는 이랑은 높은 두둑이 약 1m, 고랑이 40cm 이상의 모양이었다. 그것도 일자형이 아니고 위에 밭 모양새와 나란히 하여 곡선이 생기도록 하여 옛 천수답 모양의 고전적인(?) 밭이랑이었다. 통상적이지 않은 요청을 그대로 받아 주셨다. 어찌나 고맙고 감사하던지 모두들 선생님이셨는데 신입생의 바람과 의지를 꺾지 않으셨다.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이 응원과 격려에 힘입어 계획대로 씨를 품은 지피필렛을 두둑 중앙에 일정 간격을 두고 묻었다. 여기서도 두 분의 도움을 받아 여섯 이랑을 두 이랑씩 맡아 해치웠다. 아! 다 심었다. 
 작물 선택, 재배 방법 결정, 실제 파종 및 정식, 그리고 다음 단계는 양육(관리)이다. 첫 작업은 스멀스멀 올라오는 방해자들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고사리가 미처 싹을 틔우기도 전에 먼저 출몰한 저들이 얄미웠지만 고사리의 싹이 나와 제 모습이 확실히 구별되기를 기다렸다. 하루에 한 줄씩 일감을 정하고 새벽에 나가 전투를 시작했다. 약 30m가 넘는 한 줄 풀 뽑는 일은 3시간 이상 소요되었다. 먼저 손으로 시작했다. 오른손, 왼손, 또 두 손으로 목표물을 눈으로 확인하여 손가락으로 잡고 당기는 내내 풀 뽑는 기술에 대해 고찰을 하듯 했다. 
 처음은 번번이 뿌리는 뽑히지 않고 여린 풀잎만 잡아챘다. 마음을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목표물의 하단부를 야무지게 잡되 부드럽게 접근해야 나의 힘이 뿌리까지 미친다는 알아챔에 도달했다. 전쟁이 아니라 씨름이었다. 샅바 싸움! 하지만 앉는 자세가 도무지 잡히질 않아 무릎을 세웠다가 꿇었다가 다리에 쥐가 나면 일어서서 엉거주춤 허리를 구부렸다가 다시 퍼질고 앉았다가 거의 엎드려도 보기를 하염없이 하는데... 이 일을 누가 말려 주었으면 하는 푸념과 함께 내 온몸의 근육들이 도무지 움직이질 않는다. 이렇듯 육적 심적 한계가 넘어서면 무인식의 노동에 접어든다.
 그즈음 허리를 펴고 팔다리를 흔들 요량으로 뒤돌아서 무너뜨린 상대 선수들(풀)이 패배하여 널브러진 모양새를 보니 웬걸 승리의 감동이 밀려온다. 다시 흐뭇한 기분으로 “고사리 자네들 건강하시게”라고 공치사한다. 그뿐인가 언젠가 그 수확의 덕을 볼 사람들을 떠올리는 상상까지 이어지니 이 어찌 아니 기쁠꼬! 
 새싹 농부의 일언, “방해꾼 풀과는 전쟁이 아니라 씨름 한 판이다. 또 씨름판이 벌어질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기다려라 샅바 잡는 기술을 연마하고 손에 맞는 도구를 찾아 기필코 내 고사리들을 지켜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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