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부모님들로부터 아이들의 도벽을 걱정하는 말들을 듣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강조하는 말이 있다. 아이들의 도벽을 도둑질이라는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느끼기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것을 탐하는 것이 도벽의 큰 특징이다. 이 점에서 도벽(kleptomania)은 도둑질(stealing)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도벽은 들키기 쉽다. 아이들이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 아이들이 하는 거짓말도 허술하다.
나는 어린 시절 부모의 돈을 욕심낸 경험담을 털어놓는 이들을 많이 봤다. 어린 시절 부모의 돈을 욕심내는 경험은 다수가 겪고 있는 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부모나 가까운 이의 물건을 훔친다고 해서 도벽증으로 의심할 수는 없다. 남의 것을 탐하는 욕구가 절제되지 못하여 빈번히 일어날 경우, 도벽증으로 진단받는다. 그러나 도벽이 심해져서 도둑질로 발전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아이들이 이런 충동성을 느낄 때 우리 부모들은 당황하지 말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도벽을 너무 큰 문제라고 인식해서 지나치게 아이들을 다그쳐서는 안 된다. 자칫 잘못하면 아이들에게 큰 상처로 남게 되어 습관성 도벽증으로 발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벽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사랑과 관심이다. 초기에 단순히 도벽의 충동을 느낀 아이를 도둑질하는 아이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우리 부모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어느 날 나는 현금 2만 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잠시 외출 후 돌아와서 테이블을 보니, 만 원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의심했다. 둘째의 책상 위에 만 원이 놓여 있었다. 아이는 자신이 지금껏 모아 온 것이라 주장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을 하는 둘째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가슴이 아팠다. 이 아이의 마음을 허하게 한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자책했다. 나는 잠시 시간을 두고 기다렸다. 그리고 아이를 위한 엄마의 노력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세 아이를 불러 놓고 공표하였다.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현금통을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으니, 사고 싶거나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껏 현금통에 있는 돈으로 사 먹으렴. 가끔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현금통에 자신의 돈을 넣으면 좋을 것 같아. 다른 식구들이 이용할 수 있으니 선한 기부가 된단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막내가 거실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는 거실 청소를 하면 용돈 5천 원을 받을 수 있다. 막내는 청소해서 번 돈 5천 원을 현금통 안에 넣었다. 형들을 위해서 5천 원을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둘째가 방에서 나왔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엄마 돈이었던) 만원을 현금통에 넣고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죄송해요.” 나는 아이를 꼭 껴안아 주었다. “아니야, 엄마가 더 미안해. 네게 유혹이 될 만한 물건을 엄마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아서 정말 미안해.” 막내도 형을 안아주면서 말했다. “형아, 울지마. 사실 나도 테이블 위에 있는 돈을 가지고 갈까 살짝 고민했었는데 참았던 것뿐이야.”
우리 집에는 누구나가 이용할 수 있는 현금통이 지금도 여전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급하게 현금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돈을 꺼내서 이용하면 된다. 집 안에서만큼은 돈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고, 어느 누구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현금통에 있는 돈이 점점 더 불어나 지금은 꽉 차서 더 큰 통으로 교체해야 할 때가 되었다.
10단계의 부모는 아이의 행동에 대한 잘못이 부모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행동에 대한 잘못의 원인을 아이들에게서 찾지 않으려 노력한다. 10단계 부모는 돈을 가져간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돈을 가져가고 싶게끔 만들어놓은 어른의 잘못이 크다는 것을 깨닫고 사과할 줄 안다. 도벽의 문제를 강압적인 훈육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면 도벽도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 중 하나가 될 수 있고, 우리 아이들도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식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