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 이야기 21]진짜 사람 시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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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학교 이야기 21]진짜 사람 시체 있어요?
  • 한들신문
  • 승인 2021.07.1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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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초 교사 금원배

 

3학년 사회 공부로 우리 지역 문화유산을 조사한다. 주상에는 내오리 지석묘가 있다. 지석묘는 고인돌이다. 조사 가기 전에 계획을 세운다. 교과서에는 학생들이 계획 세우기 쉽도록 표를 만들어놓았다. 무엇을 조사한다고 쓸까? 번뜩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물어볼까? 고인돌인데 어렵지 않을까? 뻔한 말이 나올 텐데. 내가 좀 해줘야 하지 않을까? 사회 교과서에 석굴암 조사 계획을 본보기로 내놓았다. 본보기에 나와 있는 것처럼 고인돌의 크기를 물었다. 
“조사를 한다는 건 알아보는 거예요. 무덤이 실제 얼마나 클까? 궁금하죠? 궁금한 걸 알아가는 게 조사한다는 건데. 혹시 여러분이 궁금한 거 있어요?”
  눈만 껌벅거린다. 조용하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조사계획서에서 ‘석굴암’을 ‘내오리 고인돌’로 바꾸면 되겠네. 모양도 궁금할 거니까 모양도 살피는 걸로 하지. 교과서에 있는 걸 보고 쓰니까 조사계획서는 쉽게 채웠다.
“그럼 조사 내용은 이 정도로 하고 다음 시간에는 가보도록 합시다.”


  조사할 거리가 대강 정해졌다. 아이들에게 물은 듯하지만 내가 다 끌고 갔다. 아이들은 끌려왔다. 아이들이 끌려오니 공부는 거침없이 흘렀다. 내가 어떻게 해야 아이들 마음을 건드릴 건지 고민해보지 않았다. 교과서 보고 따라갔을 뿐이니까. 내 마음이 담기지 않으니 아이들도 진정 자기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아, 사회 공부가 쉽지 않구나. 어떻게 아이들 마음을 끌어내야 하나? 


  사회 공부가 끝나고 쉬는 시간, 아이들에게 화장실 가라 하고 나는 교실 둘레를 어슬렁거렸다. 지호가 내게 와서 묻는다.
“선생님, 거기 무덤에 진짜 사람 시체가 있어요?”
  이 말에 내 눈이 번쩍 뜨인다. 방금 이 아이가 뭐라고 했나? 시체가 있냐고? 이게 뻔한 질문이긴 해도 뻔한 걸 대할 때 오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지호는 진짜 궁금해서 물었다. 진짜 물음이다. 내가 그럴듯하게 조사할 거리를 읽어주던 것과는 견줄 수 없다. 살아있어. 나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지호를 봤다. 
“지호야, 진짜 궁금하겠네. 지호가 생각한 거야?”
“네. 묘가 무덤인데 거기 시체 있어요?”


  아이들은 이런 게 궁금한 거지. 학자들처럼 고인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지금 궁금하지 않아. 지호가 내게 손을 내밀었어. 여기서 내가 시체 따윈 없다고 말해버린다면? 이 물음을 지호가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진짜 배움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내가 교과서를 보고 알려준 것보다 지호 물음이 더 끌린다. 아이 수준을 생각한다고 했지만, 그럴듯한 조사를 떠올렸다. 더구나 아이들에겐 어려울 거니까 내가 물음을 정하고 아이들은 따라오게만 했다. 저마다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있을 테고, 궁금하게 만드는 게 내 일인데. 나는 넣어주려고 했구나. 지호야 고맙다. 지호 덕에 멈출 수 있게 됐네. 


  지호 물음 덕에 흥이 붙었다. 고인돌을 보러 가는 재미가 생겼다. 고인돌 밑에는 진짜 시체가 있을까? 고인돌을 보러 가서는 시체가 있는지부터 찾았다. 이쯤 되면 고인돌을 봐도 그냥 보지 않는다. 알고 싶어진다. 더 보게 된다. 마음 가는 만큼 물음도 더 섬세해진다. 수업 시간 질문할 거리를 못 찾던 아이들 사이에 궁금한 게 생겨났다. 아이들 입이 터졌다. 

‘저 큰 돌을 어떻게 옮겼을까? 왜 내오리 고인돌은 깨졌을까? 돌 색깔은 왜 이쁠까? 왜 탁자식일까? 뚜껑돌은 왜 없을까? 고인돌 밑에서는 무엇이 나왔을까? 윗돌은 왜 클까?’

  시체 있는지도 물어볼 수 있는데 뭐든 물어봐도 되지 않겠는가. 시체 질문 덕에 아이들이 질문할 용기가 생겼다. 아이다운 물음이다. 얕잡아보지 말자.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자료를 찾아 답해주면 싱겁다. 좀 정성을 들이자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전문가에게 물어보면 어떨까?

 

  거창박물관 관장님과 화상통화를 했다. 스마트폰으로 영상 통화하는 걸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면서 한 명씩 자기 질문을 던졌다. 아이들도 긴장하고 나도 긴장했다. 박물관 관장님도 긴장했을 테다. 고인돌 색깔이 왜 이쁘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겠는가. 박물관 관장님이나 우리 아이들이나 영상통화로 묻고 답해보는 경험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 내오리 지석묘

 

>  주상초 3학년 ○○○
사회 공부했다. 문화유산 답사 공부하러 지석묘에 갔다. 선생님 차 타고 지석묘에 갔다. 선생님 차가 좋았다. 나는 이 지석묘가 몇 년도에 만들어져 있는 건지 몰랐다. 표지판을 보니 2500년 전에 만들었는지 알았다.
근데 지석묘에 가서 궁금한 게 있었다. 그걸 싹 다 말을 하려고 하니 기억이 안 난다. 
그렇지만 기억이 딱 3개 난다. 첫 번째는 뚜껑돌이 없어진 거랑 두 번째는 고인돌이 깨져있는 거랑 마지막은 고인돌이 넘어져 있는 것이다. 
또 강원도에는 탁자식이 많다. 그런데 내오리 고인돌도 탁자식이다. 거창에는 바둑판식이 있다. 큰 구멍이 돌에 있으면 고인돌이다. 고인돌 밑에는 돌칼, 돌화살촉, 항아리, 돌주먹이 있다. 그리고 넘어져 있다. 
구본용 관장님이 거창박물관에 와보라고 했다. 엄마한테 보여줘서 꼭 거창박물관에 갈 거다. 
(2021. 6. 8. 화)


내오리 고인돌 견학 영상
내오리 고인돌 견학 영상


  처음 답사 계획은 내오리 고인돌을 보는 것까지였다. 이제 계획이 바뀌었다. 박물관에 가야겠다. 박물관 관장님이 영상통화하면서 말씀하셨다.
“주상초등학교 어린이 여러분, 거창박물관에 꼭 오세요.”
  아이들도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202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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